네가 가라 하와이

1화, Life! Here I come

by 마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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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하와이에 잘 도착했어요. 여긴 호노룰루 입니다. 한국에선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는데, 시간을 돌려서 다시 여름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에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몇 개월 동안은 서른 아홉의 여름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다시 살아 볼려고요. 한살차이가 뭐가 대수냐고 하겠지만, 일주일만 뒤로 돌릴 수 있다고 해도 뭔가 엄청난 일을 할 것 같지 않아요?


우리에겐 두 가지 삶이 있다고 하잖아요. 내가 살았던 삶과 살지 않은 삶. 머릿속에만 있는 살지 않은 삶을 꺼내 보는 거에요. 이번엔 온전히 야성의 힘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 보자고 다짐했어요.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아주 지독한 연애를 하고, 소설을 읽고, 수영을 하고, 창작을 하고, 모든 부름에 "예스"라고 대답해 보기로요. 무슨 트루먼쇼를 찍는 것도 아니고, 좀 정신 나간 구석이 있으면 어때요. Dance as if no one is watching becuase nobody is watching!!


여기선 민소매셔츠에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다니니까 헐벗은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보고 혀를 끌끌 차는 동네 노는 누나 같은 느낌이죠. 쯔쯔 저 나이값도 못하고. 애들 보기 창피해서. 이런 소리에도 거침없이 동네 한 구석을 지키는 거에요. 어엿한 지역 주민으로서 말이죠.


한 동안 사촌 언니네 집에서 지내기로 해서, 지금은 언니 집 2층 비디오룸에서 지내고 있거든요. 큰 티비가 있고, 철지난 DVD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공간이죠. 여기서 내 것이라곤 기내용 수트케이스에 들어가 있는 것이 전부에요. 타인의 공간에서 생활하는 건 익숙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지낼만 합니다. 화장실 갈때 마다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 눈치도 보이고 귀찮긴 한데, 호노룰루 숙박비 장난 아니거든요. 감사한 일이죠.


하와이가 7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는 건 여기와서 처음 알았어요. 우리가 잘 아는 호노룰루는 그 중에 오아후라는 섬에 있고, 저는 거기에 있어요. 여긴 하와이 대학교 근처에 있는 아파트구요.


사람들은 여행을 오면 보통 와이키키 해변 근처에 있는 콘도나 호텔들에 묵더라구요. 저도 오자마자 와이키키로 달려갔죠. 사랑과 낭만의 와이키키 해변.


길게 늘어선 다채로운 색깔의 서핑보드를 보며 이미 저의 마음은 파도를 타고 있었어요. 그래, 본격적으로 서퍼가 되는 거야. 일전에 발리에서 원데이 서핑클래스에 참가했는데, 정말 기가 막힌 인생 사진을 건졌습니다. 이 인생 사진은 27달러였기 때문에 전 구입하진 못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비싼 사진으로 그저 내 맘속에 저장. 세이브.


보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해변이 나와요. 처음엔 엄청난 인파에 놀랐어요. 하지만 당황하지 않았죠. 한 여름 부산 해운대도 갔었는데요. 뭐, 이 정도는 "여~러" 사람이 있다라고 얘기 할래요.


하와이 남자들이 그렇게 잘생겼다더니 거짓말이 아니었어요. 아니, 이 사람들 중에 정말 하와이 현지인은 20%도 안되겠지만 눈에 휴가필터가 씌어지니까 세상이 그저 아름답게 보이더라구요. 그렇다면 이제 내가 저 사람들 중 한 명(or more)과 사랑에 빠지는 건가. 나이스. 희망은 언제나 지식이나 경험보다 더 힘이 센 법이죠.


복권에 당첨 되면 어떻게 해야하지? 대비하는 마음 자세는 중요할 거에요. 인생이란 말이죠. 언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 상황 속에서 사랑에 빠지는 연습을 해봤어요. 왠 주접이냐고요?


이 때 고개를 어떻게 돌릴까. 목덜미를 노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거든요. 웃을 때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무릎을 만진다던가, 내 앞에 있는 잔을 돌린다던가 하는 것은 매우 전통적인 수법이죠. 템포와 타이밍이 중요해요. 퀵퀵슬로우슬로우. 바로 지금 이야! 머리를 돌려.


어깨를 넘기는 긴머리는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이에요. 40대에는 긴머리로 살기로 결심 했거든요. 머리가 길면 더 감상적인 사람이 된다고 하던데. 류승범을 보세요. 세상 아티스틱 하잖아요. 그 정도는 길러야 예술가 소리 듣죠.


저는 원래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장비 갖추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로맨스를 위해 긴 머리를 준비했어요. 스파이더맨 고모 봤죠?(마리사 토메이). 그 정도는 되야 한다구요. 머리 말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감수 해야겠죠.


걱정 마세요. 50이 되면 다시 숏컷트로 돌아갈 생각이니까.


나는 예스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누구도 어떤 질문이나 제안도 하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언니가 휴가여서 저를 데리고 섬 위 쪽으로 드라이브를 시켜 주겠데요. 예스! 예스! 오픈 마인드로 걸어다니는 일은 꽤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낯선 우연, 언제 올지 모르는 만남의 기회, 이 모든 것들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자야겠습니다.


굿나잇



\Photo by Abigail Lyn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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