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Artistic garlic man아티스틱 갈릭 맨
이전 편: 2화, Driver Saito 네가 가라 하와이
일찍 길을 나섰습니다. 언니의 친구는 펄시티Pearl City에 살고 있는데, 친구를 픽업해서 와이마노 트레일Waimano Trail을 갈 거래요. 30분을 달려 허름한 2층 집들이 늘어선 동네에 들어섰습니다. 반바지 차림의 키가 큰 남자가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이더군요.
그라피티Graffiti 아티스트인 이 남자의 이름은 박노아 Noah Park. 그는 한국계 이민 3세라고 하는데, 한국어는 '안녕'을 아는 정도였어요. 노아씨는 제 사촌언니가 하와이에 처음 와서 사귄 친구라고 하더군요. 전 둘이 얘기할 수 있게 자리를 뒷 자석으로 옮겼어요. 그리고 그의 옆 얼굴을 몰래몰래 관찰했죠.
이 예술적 직업을 가진 사람을 영화에서만 봤지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었어요. 뭔가 반항적인 이미지에 힙합의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런 외모를 생각했었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마치 오랜 아이돌 생활을 청산하고 종교생활을 시작한 수도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과거의 영광은 모두 시간 속에서 바래졌고, 희망도 꿈도 없이 오직 구원만을 기다리는 지친 얼굴의, 잘 정리된 눈썹을 가진 수도자.
어디서든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물론 날씨가 좋은 게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진정한' 예술가'를 이야기할 때, 그들이 제 발로 가난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원하잖아요. 게다가 서브 컬처인 그라피티라니. 이 화려한 휴양 도시에서 살아 남기 위해 그의 삶은 '그게 예술이냐'와 '예술이 밥 먹여 주냐'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진심으로 안아 주고 싶더군요.
그러나 '소설 쓰고 앉아있네' 하는 상황은 지금을 얘기하는 거죠. 제 모든 환상은 그의 얼굴 근육이 움직이고, 말이라는 것을 흘러나오기 시작한 순간 깨져버렸거든요. 누군가 빠르기를 2배속으로 만들어 놓은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는 투머치 토커에 건강에 무척 관심이 많더군요. 위태로운 삶이랄 것도 없었어요. 그저, 늦잠을 잔 것뿐이죠. 함부로 누군가의 삶을 판단하거나 동정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마늘 찬양이 이어졌습니다. 마늘을 옛날 필름통에 넣어 다닌다며 보여주더군요. 하루에 3알씩 먹는고 합니다. 퇴근길 전철 안을 가득 메우던 마늘 냄새가 떠올랐습니다. 회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직장인들의 냄새였죠.
어디 토종 한국인한테 마늘 설명이야? 우린 세끼 마늘을 먹는 사람들이라고.라고 생각했지만 마늘을 저렇게 까지 숭배한다는 건 귀여웠어요. 저기 흑마늘이라고 들어봤어요? 하면서 대화에 끼어들었죠. 마늘과 쑥을 1000일 동안 먹으면 곰도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참았습니다.
우리는 가는 내내 건강식품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었습니다. 우리 나이에는 자기가 믿고 있는 신비의 건강식이라는 걸 하나씩은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도 '노니'에 대해서 떠들었죠. 노아씨도 어떤 사람들과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겠지만, 건강이나 재테크도 삶에서는 빠질 수 없는 어젠다죠.
그는 얼마 전에 이혼해서 이사를 했고, 지금은 900달러 월세에 살고 있군요. 혼자 살고 있는 지금이 너무 좋데요. 세상 나쁜 년과 3년이나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는데. 언니도 잘 아는 사람인가 봐요. 참 섬이라는 것이 그래요. 모두가 모두를 아는 것 같아요. 가끔은 그게 너무 답답해서 섬에서 벗어나고 싶어 지죠.
와이마노 트레일에는 이미 사람이 많았어요. 신기하게도 야생 닭들도 많더군요. 닭들도 이 지구 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가끔 잊어버려요. 4.5킬로 정도밖에 안 되는 하이킹이지만, 숲이 무성해서 정글 안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따로 또 같이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리고 노스쇼어North Shore에 가서 푸드트럭 쉬림프도 먹고, 돌 플랜테이션도 갔다가 집으로 왔죠. 전 먹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건 잘 못해요. 줄이 길게 늘어선 맛집은 언제나 피해 가죠.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만 높아지는 만큼 상실감은 커지기 때문이에요. 혼자였다면 새우 트럭의 긴 줄을 기다리는 건 안 했을 거예요. 그러나 현지인 언니는 물 건너온 관광객 사촌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그것은 제가 예상한 대로 튀긴 새우 맛이더군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졸음에 눈이 무거워지고 예술가 노아씨의 마늘 찬양 2 부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길었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