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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Aug 28. 2019

산티아고 다이어리(2)

70대 부모님과 함께한 20일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은 아버지의 버킷 리스트에서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다이어리 (1) 

DAY 8 6월 3일 08:00 로그로뇨Logrono - 나바레떼Navarrette (13km/도보)

우리는 대부분의 저녁식사를 간단하게 만들어 먹었다. 알베르게가 아닌 아파트나 펜션을 이용하기로 하면서 이외의 비용은 줄여보려고 했던 이유이기도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기 위함 이기도 했다. 10유로 정도면 그럴싸한 저녁이 탄생했다. 아버지는 이번 여행에서는 소주를 끊고 와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저녁 식사마다 와인을 곁들였는데, 1병에 2-3 유로의 테이블 와인이었다. 그러나 플라스틱병에 담긴 작은 소주병들은 여전히 아버지 가방 속이나 식탁 위에서 성스러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저녁 스페인 2019

끝없이 펼쳐진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지나며 스페인 최대의 와인 산지인 리오하Rioja로 들어서게 된다. 식당에서 다양한 음식들과 함께 테이블 와인을 한병 6-7유로에 마실 수 있고 숙성 기간이 오래된 그랑 리제르바Gran Reserva급 와인들도 한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다. 잘 숙성된 와인과 올리브 절임, 그리고 잘 구워진 빵, 이것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 (고추장이다. 고추장이 필수다) 


우리는 이른 오후부터 늦은 저녁까지 여러 식당들을 돌아다니며 올리브가 주가 된 타파스와 함께 와인을 3병이나 마셨다. 한 때 둘도 없는 사이였으나 소식이 끊겼던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난 듯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아버지가 한때 문학청년이었고 대학도 최초에는 국문학과에 진학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가족이 되기 전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이후 우리 셋은 어깨동무를 하고 온통 와인 관련 이미지들로 장식된 펜션으로 돌아와 완전히 뻗어 버렸다.  


이쯤에서 나는 이 여행을 더 이상 "순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에 머리가 복잡해 지곤 했지만, 그 길의 끝에 다다르면, "오늘 저녁 뭐 먹지?" 정도의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 길은 일찍 시작되고 일찍 마무리된다. 걷고 먹고 마시고 자고,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 단순하고 강력한 삶의 리듬 안에서 오늘 이뤄야 할 것은 다 이루었다. 


DAY 9 6월 4일 나바레떼Navarrette- 부르고스Burgos (103km/버스)

아침 일찍 유쾌한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보통 3-5유로인데, 예외 없이 생과일 오렌지 주스와 커피, 토스트가 메뉴로 나온다. 이쯤 되면 순례길 아침식사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 같다. 아주머니는 그 지역 올리브 오일은 세계 최고라며 너스레를 떨고, 우리는 엄지 척을 해주며 아주머니의 흥을 돋웠다. 


오늘은 어디까지 갈지 아직 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버스를 타기로 했다. 혼자 정류장에 가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돌아와 짐을 챙겼다. 버스는 하루에 4번 다닌다. 시간에 맞춰 부모님과 함께 정류장으로 나갔는데, 1시간 전에 있던 사람들이 여전히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알고 보니 한국 사람들이었다. 거의 3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체념한 목소리다. 시간표는 있지만, 버스가 언제 올진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 30분쯤 기다리고 버스를 탔다. 운이 좋았다. 시간표에 있는 것과는 다른 버스이지만 지금은 무엇이든 타야 하고,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부르고스까지 가게 되었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서둘러 시내 아파트를 예약한다. 이런 즉흥적인 여행은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불안해서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마에 주름을 늘리고 있었지만, 일주일이 지나고는 그 무계획성을 조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숙소 쪽으로 걸어가며 부르고스 대성당을 지났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마음에 번개를 맞은 것처럼 자리에 서 버렸고 완전히 압도당했다. 우리는 홀린 듯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그 복잡함과 깊이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고딕 양식의 이 건축물은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그러하듯,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첫 삽을 뜬 지 300년 만에 완성되었다. 


나는 20대 한 시절 프라모델 만들기에 빠져 있었다. 미동도 없이 어떤 의식을 치르듯 조립 설명서를 펼쳐 놓고 앉아, 세상에서 가장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숨 쉬는 것도 조심스럽게 '플라스틱'을 사포질하고 있던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 부르고스 대성당은 아마 신이 인간을 핀셋으로 이용해 만든 광적인 정교함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후부터 굵은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칠 줄을 몰랐다.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우리는 날씨를 핑계 삼아 내일 하루 더 부르고스에 머무르기로 했다. 


DAY 10 6월 5일 부르고스Burgos all day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길을 떠나지 않는 느린 아침을 맞았다. 아침을 먹으며 추적추적 빗소리를 들었고, 계획도 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앉아 있었다. 10여 일 만에 드디어 주말이 찾아온 것이다.(사실은 수요일이었지만 이미 요일에 대한 감각을 잊었다) 매일 짐을 꾸리고 새로운 길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 것도 무척이나 신나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두려움, 아쉬움 같은 것이기도 했다. 한 없이 게으른 11시였다. 


아버지는 2시간째 축구를 보고 있다. 이게 얼마 만에 영접하는 텔레비전인가. 게다가 축구라니. 아버지의 눈은 다이아몬드보다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도무지 '골'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시끄러운 해설에 귀가 따가워졌다. 해설자의 입이 선수들의 발보다 빠르게 드리블을 이어 가고 있다. 그리고 정말 골이 들어갔을 때는 골골골골골골골, 그야말로 EDM골잔치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정신 사나운 그놈의 골골골골'에서 탈출 하기 위해 우리는 우비를 입고 집을 나섰다. 부르고스 가로수길을 지나 시내로 나가면 낯익은 브랜드의 상점들과 타파스 바들이 늘어서 있다. 부르고스에서 한국 컵라면을 살 수 있는 슈퍼가 있다는 글을 보고 찾아가 봤다. 나는 오늘 한국 컵라면과 김치를 사서 먹어볼까 생각했지만, 가격 앞에서 바로 생각을 바꿨다. 작은 컵라면 하나에 3유로였다. 지금 여기서 싼 것을 잔뜩 먹고 가자. 그래서 우리는 체리와 아스파라거스를 샀다. 3 유로면 정말 잔뜩 먹을 수 있다. 


슈퍼에서 계산을 하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우박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 엄청난 소리와 내리는 기세에 주눅이 든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슈퍼 처마 밑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이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늘에서 인간들을 향해 엄청난 양의 비비탄을 쏘아대며 웃고 있는 듯했다. 마치 지구 최후의 날을 맞은 것처럼,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장면 속에 서 있었다. 


오늘의 부르고스는 추적추적,  골골골골, 타다다다의 다분히 의성어적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DAY 11 6월 6일 08:00 부르고스Burgos  - 폰페라다Ponferrada (286km/기차) 

다시 길 위에 섰다. 1시간을 걸어 부르고스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부르고스 역은 시 외곽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져 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 걸어갔지만 시내와 역을 연결하는 버스들이 많다. 이제 남은 일정은 8일 정도. 조금 더 멀리 가야 한다. 새마을호 같은 느낌의 낡은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달린다. 창 밖으로 넓은 보리밭이 펼쳐지고,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객들이 보인다.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저 길을 걷고 있을까. 

비와 함께 걷는 어머니와 아버지, 2019

기차역에 내려 예약한 알베르게를 찾아가는데, 다시 주룩주룩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멋진 다리를 건너 템플 기사단의 성을 왼편으로 두고 그 길의 끝에 다다르면 알베르게 기아나Albergue Guiana (13유로)에 도착한다. 규모는 큰 편이고 깨끗하며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폰페라다는 꽤 큰 도시로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함께 방을 쓰게 된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온 유쾌한 60대 여성분은 시작 지점부터 여기까지 걸었더니 이제 그만 걸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비슷한 풍경을 보며 걷는 것도 이제 지겹단다. 깨달아야 할 것도 다 깨달았다고 한다. 오늘로 순례길을 멈추고, 남아 있는 3주 동안은 바닷가에서 와인이나 마시다 돌아가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 크리덴셜에 도장을 받는 것에 집착한다. 도장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고, 이런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도장을 찍어주는 곳도 있다. 수요와 공급이 명확하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이 길에 서 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한국 사람들만 만나면 '효녀' 소리를 들었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효녀' 소리를 듣고 무척이나 부끄러웠지만 갈수록 익숙해졌다. 


DAY 12 6월 7일 08:00 폰페라다Ponferrada - 루고Lugo (111km/버스)

오늘의 일정을 두고 고민이 많았다. 걸어서 빌라프랑카 델 비에르조Villafranca del biezo까지 갈 것인가. 이 지역은 '스페인 하숙'이라는 TV프로에 나왔던 지역으로 갑자기 핫플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아니면 오 세 브레이로 O Cebreiro로 갈 것인가. 코엘료의 연금술사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바로 그 석양이 아름다운 마을. 아.. 나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효녀일 뿐이다. 그러나 도저히 오 세이브로로 가는 루트가 나오지 않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스페인 하숙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페인 골목 식당 메뉴 2019

버스 루트를 확인하고 아예 프랑스 길에서 벗어나 포르투갈 길에 있는 루고로 방향을 잡았다. 계획했던 프랑스길에서 벗어난 다는 것 만으로 왠지 여행이 새로워지는 느낌이었다. 루고도 포르투갈 길에서 매우 큰 도시로 알려져 있고 문어요리pulpo로 유명하다. 거대한 성곽을 따라 걸어 성 안쪽에 자리 잡은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에 짐을 놓고, 근처의 음식점으로 간다. 숙소를 잡고 처음 하는 일은 앱에서 음식점을 확인하는 일이다. 음식점들을 맵 위에 모두 표시해 놓고, 가까운 곳부터 리뷰를 확인해 보는 식으로 하는데, 별로 실패가 없었다. 사실 맛보다는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스페인 음식점들은 오후에는 쉬고 늦게 다시 문을 연다. 우리처럼 아침에 활동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나이 많은) 걷는 사람들'에게는 8시 30분으로 저녁 시간을 맞추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 시간이면 이미 내가 지도를 펴 놓고 앉아 졸고 있을 시간 이기 때문이다.   


오늘 갔던 식당은 숙소가 있는 골목에 있던 작은 식당으로, 열정적인 주인이 음식을 설명하고 서빙을 했다. 메뉴에 있는 음식을 거의 다 시켜서 먹어 보았다. 신선한 재료를 쓴 해산물은 뭐 그냥 맛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많이 걷지도 않고 이렇게 먹기만 해서 되나 싶었지만 맛있게 먹으면 칼로리 0이라고...... 어디서 들었다. 


DAY 13 6월 8일 08:00 루고Lugo - 멜리데Melide - 리바디소Ribadiso (51km/버스-15km/도보) 

루고에서 일찍 버스를 타고 나와 멜리데까지 왔다. 프랑스길로 재 진입한 것이다. 오늘 계획은 여기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리바디소로 걸어가는 것이다. 멜리데도 문어 요리로 매우 유명하고 아침부터 한국 순례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문어 요리를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내를 지나쳐버렸다. 시내의 끄트머리에 있는 식당에 간단한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갔는데 이미 많은 할아버지들이 흥겹게 한잔 하고 있다. 토요일 오전 11시였다. 


주인아저씨가 계속해서 술을 권하는 통에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다. 토요일인데 한잔 해야죠! 그 식당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맛 보여 줄 모양이었다. 식당에 등장한 외국인을 보고 신이 난 것인지 자기 흥에 한 껏 취한 아저씨는 나를 주방으로 불러 셰프와 인사를 시켜 주고, 거기 있는 모든 식재료들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손님들과도 인사를 했다. 저녁시간에 왔으면 저 장단에 맞춰 내가 춤을 춰 줬을 텐데. 아쉽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15킬로를 더 걸어가야 한다. 그곳은 아마도 돼지 도가니 찜 전문이었는데, 문어로 유명한 동네다 보니, 현지 단골들을 주로 상대하는 식당인 것 같았다. 다음에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을 하고 부엔 까미노를 외치면 식당을 나왔다. 식은땀이 흘렀다. 


리바디소에서는 작은 알베르게Albergue Milpés에서 묵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꼰대의 정수를 만났는데, 자신을 교수라고 지칭한 이 60대 남자분은 누구에든 가르침을 주기 위해 안달 나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에 어김없이 나는 또 효녀 소리를 듣고 앉아 있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이 결혼을 하지 않아 걱정이다."라고 앓는 소리를 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교수분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으려고 하는 20-30대 젊은 세대의 '무책임함'에 대해 울분을 토해냈다. '우리 때는 말이야'의 일장 연설이 다시 시작될 때  나는 "저는 40대인데요"라고 하며 쉽게 그 자리를 모면해 보려 했으나, "늦지 않았어요, 좋은 인연 만날 거예요.", "기술이 좋아요. 임신할 수 있어요"하는 뜻하지 않는 파이팅과 원치 않는 축복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여기서 깽판을 칠까 말까 고민하느라 가슴이 벌렁벌렁거렸다.  


어떤 날의 컨디션, 기분 또는 행복을 결정한다고 믿었던 것들, 돌아보면 사실 매우 사소로운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샤워시설이나 베개, 숙소의 온도, 대화를 나누게 되는 사람들이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 좋든 나쁘든 오늘이 지나면 지나가고야 만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DAY 14 6월 9일 08:00 리바디소Ribadiso - 오피노O Pino (16km/도보) 

함께 묵었던 사람들은 새벽같이 길을 나섰고, 우리는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오늘 산티아고까지 들어가야 하는 일정이라 갈 길이 멀고, 우리는 며칠에 나눠 걷기로 해서 여유가 있었다. 

햇볕을 머금은 숲길, 2019

원래는 종착지를 남겨 두고 100 킬로 전 지점에 있는 사리아Sarria 부터 걸어서 산티아고 대성당을 좀 더 드라마틱한 기분으로 입성하려 했으나, 묵시아Muxia와 피스테라Fisterra까지 돌아보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면서 42킬로 지점인 리바디소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뒤로 순례객들이 부쩍 많아졌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이 길의 아름다움을 쉽사리 헤치지는 못했다. 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에서 잊지 못할 풍경을 남겨 주기로 작정한 것인지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었다. 이제와서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스며들던 햇빛, 신선한 흙냄새, 마른 잎과 새로 돋아난 푸른 잎의 어울림, 정체를 알 수 없는 작은 생명체들의 움직임, 그리고 바스락거리는 공기, 수풀 사이로 부는 바람, 그런 것들이 자꾸만 그리워지는 것이다.   


DAY 15 6월 10일 08:00 오피노O Pino - 오페드로조O Pedrouzo (5.2km/도보)

사람들이 많아져서 이제 거의 1미터 간격을 두고 줄을 지어 걷고 있는 느낌이다. 단체로 걷고 있는 많은 스페인 학생들을 볼 수 있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 것인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 있다 보니, 날씨 좋은 주말 청계산에 오르고 있는 것만큼이나 소란스러웠다. 


중간중간 마주치는 카페들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오페드로조는 꽤 큰 마을이고 알베르게도 많았는데, 순례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인기가 꽤 많은 지역인지 건물 이곳저곳에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고, 우리가 예약한 펜션도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모양이었다. 주인장은 젊은 남자로, 최근에 이곳으로 이주해서 펜션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순례가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에 가까울수록 물가와 숙박이 비싸지고 있었는데 현실 감각도 살아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역시 답은 부동산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주인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우리는 예약한 펜션(Pension 9 de Abril, 50유로) 근처에서 순례자 코스 메뉴(12유로)로 저녁을 먹었다. 큰 식당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모두 내일이면 끝나는 이 여정이 아쉬워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 인심 좋은 식당은 엄청난 양의 음식과 와인을 제공하고, 맛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집을 떠나온지는 3주가 다 되어가고 길 위에 선지는 2주가 넘었다. 그러나 아직 그리운 것은 없었다. 


DAY 16 6월 11일 07:00 오페드로조O Pedrouzo -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 - 묵시아Muxia (18km/도보- 75km/버스)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산티아고를 향해 간다. 오늘은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들어가서 점심을 먹고, 묵시아로 가는 버스를 탈 것이고, 묵시아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었다. 


5시간을 걸어 시내로 들어왔다. 성당 근처는 골목골목 사람들로 넘쳐난다. 오늘 도착한 순례객들과 어제 도착해서 이제는 관광객의 모습을 한 순례객들과, 그냥 관광객들과, 학생들과, 호객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거리는 흥미로운 텐션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한동안 성당 앞 광장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길이 끝났다고 메달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광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무너지듯 성당 앞에 앉아 한 참을 그렇게 성당을 바라 보고 또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고,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가 버리는 것이다. 


무언가가 허무하게 끝나고 시작되어 버렸다. 아 좀 더 나 자신을 혹독하게 다뤘어야 했나. 생각보다 감흥이 없어 약간의 후회가 일렁거렸다. 조금 건강해진 것 같고, 몸뚱이가 좀 가벼워진 느낌 말고는 달라진 것이 없다.  싱겁게 종점을 지난 우리는 내가 좋은 리뷰를 확인해서 찾아간 라면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는데, 나는 사람들이 30일 동안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음식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거나 넓은 아량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맛이 없었다. 

묵시아에 살고 싶다. 2019

묵시아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번 있다. 표도 예약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가서 기다렸는데, 타는 사람들이 꽤 많아서, 아버지는 초조해하셨다. 버스는 사람 수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어서 기다리는 사람 중에 못 가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반 만에 묵시아에 도착했다. 묵시아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로 성모 발현지로도 유명하다. 숙박 주인장에게 물어 적당한 가격의 맛있는 식당을 추천받고, 다행히도 한 끼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북적북적한 대성당 앞에 섰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묵시아에 와서 아무도 없는 큰 바위에 올라서 한 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데 울컥하며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쉬움, 두려움, 경이로움, 뭐 이런 것들이 이름도 없이 마구 섞여서 지금 여기 오늘 살아 있음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 것이다. 



DAY 17 6월 12일 10:00 묵시아Muxia - 피스테라Fisterra (27km/버스)

묵시아에서 버스를 타고 피스테라로 간다. 40분 정도 타고 씨Cee 에서 모두 함께 내려 피스테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게 된다. 피스테라는 휴향 도시로 관광객들과 갈매기가 많았다. 항구 근처에 식당과 숙박시설, 알베르게가 즐비하다.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서, 산티아고 순례길 0km 비석이 세워진 곳으로 갔다. 사람들이 바위에 걸터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길래 나도 따라 해 보았다. 

뒷모습이 더 낫다고 한다. 피스테라 2019
DAY 18 6월 13일 피스테라Fisterra -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 

산티아고로 돌아왔다. 우체국에서 맡겨두었던 짐을 찾았고, 내일 새벽에 마드리드로 떠난다. 산티아고 대성당이 대대적인 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큰 향로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순례자 미사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산티아고 순례길이 상당히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말한다. 지나칠 정도로 상업화되어 있는 데다가 길도 다른 유명 트레킹 코스들에 비해서 딱히 특색이 없고, 많은 길이 도시를 지나게 되어 있어 흙길보다는 시멘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리는 딱히 좋은 길을 찾아가려고 애썼던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매일 좋은 길을 만났다. 운이 좋았다. 


오리손 산장에서 만났던 독일 아저씨는 2006년에 도장 1개를 받은 크리덴션을 보여주며, 다시 이 길에 서는데 13년이 걸렸다고 했다. 순례길을 시작하자마자 집에 일이 생겨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여행은 아버지의 버킷 리스트에서 시작되었고, 나에게는 새로운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우리의 삶이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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