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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May 24. 2021

빌 게이츠 유니버스 (feat. 이혼)

Inside Bill's Brain: Decoding Bill Gates

빌 게이츠의 이혼 발표 이후, 연일 그의 불륜 행각에 대한 보고가 일간지의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세상 모범생 같은 얼굴로 자선사업을 함께 하며, 귀감이 될 부부의 정석으로 손꼽히던 이들의 갑작스러운 결별. 나는 딱히 남의 결혼 생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니지만, 한미 언론에서 이렇게 까지 떠들어대니 이 기사들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잘난 타인의  불행이 만드는 새옹지마 판타지는 묘한 쾌감을 준다. 비록 신이 오직 빌 게이츠 당신에게 좋은 것은 모두 몰빵한 듯한, 이 느낌적 느낌이 현실이라 할지라도.  


기사를 읽다 보니 빌 게이츠에 대해 궁금해졌다. 당신의 순진한 너드(Nerd) 형 뿔테 안경 뒤 숨겨졌던 호색한의 기운을, 나는 물론 눈치 채지 못했지. 글로벌 환경과 보건 문제, 그리고 독서에 진심이었던 당신의 아카데믹하고 언뜻 지루해 보이는 인간적 면모는 넷플릭스의 다큐 Inside Bill's Brain: Decoding Bill Gates에서도 빛을 발했다. 


물론 여기서도 동네 노인들 너머로 워런 버핏과 앉아 브릿지를 하고, 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여 준다. 선거철 정치인들의 재래시장 방문만큼이나 지겹게 반복되는 "망할 놈의 인간적 면모"라는 클리쉐다. 이런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장면들을 제외하고 다큐는 꽤나 흥미로웠다.   

빌 게이츠는 금수저로 태어나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31세에 이미 업계 최초의 빌리어네어 반열에 올랐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CEO에서 44세의 나이로 은퇴해 자선사업가로 살아온지도 이미 20여 년이 지났다. 


이런 천재가 세상에 나와 벌어야 할 돈은 이미 젊은 시절 다 벌어 놓고, 이제는 인류의 질병과 싸우며 지상의 난제들을 해결하겠다고 나섰다니, 그는 혼돈의 카오스에 놓인 이 지구의 미래를 바꿔 놓기 위해 나타난, 아니 그의 말대로라면 이 비효율적인 세상을 최적화하기 위해 나타난 이 땅의 진정한 히어로가 아니냔 말이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반독점 재판을 거치며, 오만하고 에고에 가득 찬 독선적인 젊은 사업가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를 계기로 사장에서 물러나 재단 설립을 하게 된다. 자선사업가로서 20년째 이미지 물타기를 해왔고 이렇게 다큐까지 나온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그 천재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가족을 갖고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멀린다가 있었기 때문일까. 영상 말미의 Thank you, Melinda 가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고, "왜 뭐 또 사고 쳤냐"의 느낌으로 바뀌어버린 것은 왜 때문일까. 


아마존 제프 베죠스의 이혼이 39조 원이라는 막대한 재산분할 금액으로 세기의 관심거리가 된 지 어느덧 2년. 인지도 측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빌 게이츠 집안이 여기서 무언가 인사이트를 얻지 않았다면 이상하지. 나 같은 평범한 인간은 도대체 감도 없는 이 "조" 단위의 재산 분할과 2인자/조력자의 역할을 했던 여성들이 이혼 후 홀로 슈퍼리치의 반열에 진입을 하는 이 현상은 대단히 큰 모티베이션이 된다.  


기사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게이트 재단 양쪽에서 주로 함께 일 하는 여자들에게 추파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남자는 돈 있는 와중에 시간까지 있으면 바람피우는 게 정석이라고 말씀하시던 우리 할머니들의 구전 지혜가 멀리 미국에서도 발현되는 순간이었다. 이건 백퍼야. 이 기사 댓글들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선언이다. 


20년이 넘게 숨겨져 왔다가, 옳다구나 하고 불꽃놀이를 하듯 연이어 나쁜 소식들이 터지고 있다. 20년 이미지 물타기의 대실패 후 연일 떡락 상황. 2019년에는 회사 이사회에서 이미 불륜 사실을 알았고, 이 이유로 빌 게이츠가 이사회에서 쫓겨났다고 하니, 뭐 나만 몰랐던 사실 일 수도 있겠다. 물론, 게이츠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무슨 소리냐. 쫓겨난 거 아냐. 내가 먼저 나갈라고 했거든?  


부부 사이야 어떻게 알겠는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오만가지 일들이 다 일어나는 그들만의 속사정을..... 

다큐멘터리에서 멀린다는 빌 게이츠의 머릿속이 혼돈 Chaos이라 정의했다. 본인은 그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가 청혼을 하려고 했을 때, 그의 방에 놓인 화이트보드에 적힌 결혼의 장점과 단점 리스트를 보고 놀랐다는 그녀의 발언이 빌 게이츠라는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궁금하다. 유부남으로서 다른 여자에게 추파를 던질 때, 분명히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알고리즘이 작동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결정적인 트리거가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상대방 여자는 왜 20년이 다 되어 가는 불륜을 폭로하기로 했을까. 이건 다 머니 게임인가. 멀린다가 그린 큰 그림인가.  


그와 멀린다의 재단은 현재 가장 낙후되었으면서도 잔혹한 내전으로 회생의 기회조차 가지기 힘든 그런 땅에서, 그 땅의 사람들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1994년도부터 50조 원을 쏟아부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이혼 후에도 파트너로서 재단을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연 이은 폭로를 때려 맞고 있어서 멀린다가 독립할 확률 이 더 높다는 예상도 많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게이츠 씨의 포지션은 공고하다. nothing to lose


빌 게이츠는 어느 날 회의 후 프레젠테이션을 잘 마친 여자 직원에게 저녁식사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리고 상대 여성이 불쾌해 하자, 없던 일로 하자며 이렇게 얘기했다. 

"If this makes you uncomfortable, pretend it never happened, "


빌 게이츠 유니버스에서는 자신이 한 모든 개소리는 안 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유니버스에 살고 있는 사람이 오직 그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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