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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명희 May 17. 2021

연대 _ 2.08%의 진심

"연대" 학습노트 제1화 : 무엇이고 왜 어렵나?


     2020년 3월, 세계 보건기구(WHO)의 코로나 팬데믹 선언 후,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글을 썼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억제와 관리를 위한 국가, 정부의 감시가 당연시되는 사회로 진입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계속되는 바이러스 공포로 사람들은 개인의 맥박과, 혈압, 체온을 실시간 모니터링해서 위험요소를 원천 차단하자는 결의를 할 수도 있다. 유발 하라리는 그러한 감시체제가 독재국가에서 작동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지도자의 연설을 보면서 분노를 느낀 것으로 파악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까? 모두의 육체적 안녕을 담보로 고도화된 디지털 기술로 개인 감시를 당연시하고 감시를 통한 위험요소를 제거한다면, 우리는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수 있을 까? 유발 하라리는 다른 선택을 제안하며,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 '글로벌 연대(solidarity)'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국의 코로나바이러스와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을 감염시키는 방법에 대해 정보를 교환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에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많은 귀중한 교훈과 대처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이탈리아 의사가 밀라노에서 이른 아침에 발견한 것은 저녁 무렵이면 이란 테헤란에서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정부가 여러 정책 사이에서 망설일 때 이미 한 달 전에 비슷한 딜레마에 봉착했던 한국인들로부터 조언을 들을 수 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 유발 하라리, 2020, 파이낸셜타임스, 김지영 번역]


     마리는 위의 글을 읽고 “당연히 연대해야지, 그런데 이미 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게 잘 안 되는 거고...”라고 혼자 생각한다. 연대해야 이 위기도 극복하고, 인류가 살아가야 할 세상도 최대한 살만하게 물려줄 텐데. 어쨌건 서로 도와 잘 살자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돕는다’ 나, ‘협력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연대한다’고 말하지? 그런데, 새삼스레 연대라니, 옛날에 학생 운동하던 사람들이 쓰던 말 같은 데, 어딘 지 모르게 구식인 거 같고 솔직히 안 내킨다. 일단 서로 같이 한다니까 좋은 무언가 겠지... 하고 퉁치기에는 석연찮고, 구리다는 느낌이다. 연대에 대해  본인이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가만히 정리해 본다.



첫째, 이전에 ‘연대’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고통이 예상된다. 즉, 내 소관이 아닌 일,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나를 갈아 넣어야 할 것 같다.


(연대... ... 연세대...  아니고)


연대 보증, 연대 책임, 연대 투쟁...

 

     ‘연대’는 좋은 때보다 안 좋은 때, 힘들 때 작동하는 기제로  무언가 안 좋은 일에 대한 대응으로, 일이 터지면 그 일에 별 상관없던 나까지 짐을 나눠 들고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단어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 하기를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말고, 너도 손해 볼 짓 하지 말라고 했던 날들 위로 날아든 ‘연대’라는 단어는 왠지 내가 하지 않은 일, 피해 갈 수 있는 일에 대한 불편함을 스스로 나눠 드는 일을 가리킨다. 약간의 착한 마음은 있지만, 자본주의 적자생존하는 불안한 시대, 마구 달려야 할 판에 다른 사람의 짐까지 함께 드는 상황은 정말 싫다.



둘째, 연대하려면 서로 협력해야 할 것 같은데, 나와 다른 누군가와 협력하는 게 혼자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것도 훨씬 더.


다른 사람이 맞다고 하는 게, 나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내가 힘들여 한 걸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할 때도 있다. 내 일 제대로 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함께 하려니 겹쳐서 비효율인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은 결국 아무도 챙기지 않아 구멍 나는 일도 생긴다. 일을 잘 나눠보려고 하지만, 나누고 정리하는 일은 표시도 안 나고 어렵고, 재미없는 일만 내 책임으로 올 때도 있다. 그렇다. 함께하기 위해 힘과 마음을 낸 적은 있지만, 왠지 후회스럽고 허탈한 때가 더 많았다. 이럴 거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 혼자 하는 게 낫다.



셋째, 연대의 효과를 직접 느낀 적이 거의 없다.


막상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함께 힘쓰려고 해도,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힘들게 연대할 곳, 실체를 찾고 열심히 협력한다고 해도, 연대하고 있는 이슈는 너무 크고, 관계도 복잡해서 내 작은 노력이 결과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성공적인 연대는 성공적으로 창업해서 건물주 되는 것만큼 어려운 일 같다.  


에잇. 이러니 구리다고 할 수밖에. 연대!



그러나, 원한다.


     전에 없던 더위와 추위에 미세먼지 많은 하늘... 보기만 해도 우울하다. 이거 지구가 망할 것 같은데 대책이 있으면 좋겠다. 또, 너무 가난해서 불행한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나도 언젠가 그럴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기술이 발전했고, 세상에 돈은 전에 없이 많아졌다 (지구 전체의 부 는 360조 달러, 2020년 기준 한화 39경 9,502조 원으로 전 세계 인구 76억 4,047만 명으로 나눠 보면 1인당 5,228만 원씩 나눠가질 수 있다. 이를 가구단위로 합하여 구성하고, 사회적 인프라에 필요한 비용을 갹출한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있는 부(wealth)로 인간은 모두 살만한 환경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여전히 가난으로 굶주리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해주는 안전망이 좀 더 확실했으면 좋겠다. 이 문제를 푸는 데 내 손목은 못 걸어도, 이제부터 인생의 2.08%(하루 24시간 중 30분)의 시간과 자원을 쓸 수 있겠다. 이게 연대의 마음이겠지? 연대하고 싶다. 그래서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 되게 하고 싶다. 내가 나의 삶을 다 바쳐서라도 해결해 내지 못할 것들이지만, 꼭 해결 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모인다면 나의 삶을 즐기는 한 편, 뭔가 지금보다 만족스러운 세상도 만들 수 있을 거 같다. 그런데 희생은 싫다, 대의명분 아래 프랑스혁명,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처럼 인생을 갈아 넣고, 이름 없이 스러져 가고 싶지 않다. 그럼 뭐부터 어떻게 해야 사회문제에도 도움이 되고, 나도 뿌듯할까?   연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마리는 어디 연대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깜깜하다. 이것부터 누군가 함께 연대를 돌아볼 사람을 찾아서 같이 하면 좋겠다. 막 사람들이 함께 한 배를 타고, 각자 자리 자리에서 연대와 협력을 살펴보는 배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디지털 시대, 진짜 배는 아니더라도, 한 배를 탄 마음을 생각하며 온라인에  배를 지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워크보트'를 함께 짓기 시작한다. 사람들과 한 배에 타서 연대와 협력을 따로 또 같이 공부하고, 실체를 만져보는 일 또한 연대의 발걸음일 거란 기대로. 그럼 어디 한 번 만져 볼까? 연대. (2화 계속)




[특별부록: “연대” 학습노트]


     ‘연’ , ‘대’,  잇닿을 연(連), 끈 대((帶). 즉, 이어져 있는 띠라는 뜻으로, 연대는 어떠한 행위의 이행에 있어서,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것, 한 덩어리로 서로 결속(結束)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 덩어리로서 함께 일을 하거나 책임을 지는 것이다.

오호, 한 덩어리로 함께 일을 하거나 책임져야 한다고 해서 협력하는 것은 아니니, 협력과는 다른 말이구나. 그런데, 다른 존재가 협력의 마음이 없으면 연대가 안 되겠네. 그래서 같이 쓰는 거 군!  


     ‘연대’의 개념적 기원은 고대 로마의 채권법에서 왔다. 로마법은 한 가족이나 공동체의 채무에 대해 그 구성원 모두가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을 일컬어  “obligaio in solidum” (연대책임)이라 했다. 고대의 연대는 친족, 마을과 같은 좁은 범위 안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긴밀한 관계에서 기인한 활동이다. 그러기에 공동체 누군가의 성공에 혜택을 받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실패나 어려움이 고스란히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전가되어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연대는 사람들의 삶의 안전망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굴레가 되기도 하였다.

아. 그래서 ‘연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왠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도, 고구마 먹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구나. 이 시기의 연대는 공동체 안에서의 강한 결속, 유대(bonding) 관계에 가까웠네.



     18세기 이후, 국제교역이 늘어나고, 산업혁명으로 지역별, 마을별 공동체의 의미가 해체되고,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연대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생산과 소비를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면서 생기는 가족처럼 강한 운명적 관계를 연대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보다는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일에 대하여,  자신의 사회적 필요에 따라 참여하는 개별 구성원들의 자유와 권리를 전제로 형성되는 활동이다. 오늘날의 연대는 사람들의 관계가 내가 속한 지역과 국가를 벗어나, 자신이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가능해졌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또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슈에 대하여, 자유로운 개인 혹은 집단들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그룹을 형성하거나 혹은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의 숙명적인 상하 관계 상부에 있던 왕이나, 정부, 가장의 승인, 지지나 도움 없이도, 자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혈연, 지연, 학연 없이도 연대는 사람들을 묶어 줄 수 있다. 자신에게 중요한 문제, 자신이 사회적으로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사람들을 조직하고 협력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는 사회적으로 ‘연대한다’라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연대한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면 프랑스혁명, 흑인 민권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부터 지금의 아시아 혐오 반대운동,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등교거부 시위를 들 수 있다.

그래서, 연대를 통해 사람들은 사회에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만들거나, 정부나 기업, 개인이 다루지 못했던 이슈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인 인식을 만들 수 있었던 거군. 자신이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슈에 따라, 원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나름대로 ‘연대’를 해왔고, 이러한 연대는 이제 SNS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규모가 생기고, 빠르고 효과적인 움직임으로 일어나기도 하네. 지난해 마스크 대란 때 마스크 재고를 알려준 시빅 해커의 활동이나, 코로나로 집회가 어려워지자 닷 페이스가 시작한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처럼 말이지.


[본문 링크 이 외, 참고문헌]
1. 고려대 한국어사전, 2020
2. 연대’(solidarity) 개념에 대한 철학적 성찰, 2013, 서유석
3. 강수택, 연대의 개념과 사상,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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