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에 왔다. 6개월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으나, 지금 적응으로 봐서는 1년이 될 것 같다. 하던 일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하는 일이라, 8-5시 컴퓨터 앞에 앉아하던 대로 충실히 일하면 되고, 한 두 달에 한 번씩 가서 뵈야지 하던 오프라인 미팅도 코로나로 가능하면 온라인으로 전환되어서 서울에 있지 않아도 일은 꼬박 돌아간다. 다만 점심에 밥 먹고 크록스 신고,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그고도 점심시간 1시간이면 족하다는 점, 주말에 어디 갈라치면, 짐 바리바리 싸서 여행 준비 안 해도 되는 점이 달라졌다. 생경하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당분간은 딱히 다른 곳을 여행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말이다.
완도에 와서 스스로 약속한 것이 있다.
완도 친구 한 명 사귀기.
매일 하루에 한 번은 바다에 나가고, 돌아올 때 쓰레기 주워오기.
완도읍내에 일주일에 한 번은 나가기.
아이들이랑 있을 때 아이들에 집중하기.
물건은 가급적 완도 5일장이나 완도 매장에서 사기.
이 중 완도에 처음 올 때는 없었다가, 완도 와서 며칠 지나고 넣은 것이 쓰레기 줍기이다. 환경에 대한 큰 결심, 기후위기의 대응 같은 빅 피쳐는 아니었다. 단지 지금 맞닿아 있는 자연, 바다에 사람이 남긴 흔적이 보기 싫어서가 크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은 전남농산어촌유학으로 지원해주는 단기 거주지이다. 그래서 언감생심 작지만 평고 살아보기 힘든 해변 바로 옆에 살게 되었다. 그것도 손에 꼽게 해변이 유명한 명사십리 해수욕장 바로 앞에 말이다. 그래서인지 당연히 깨끗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할 때부터 해변 사이사이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보였다. 계절이 비수기여서 그런가, 청소하거나 관리하는 사람은 없다. 도시에서의 출근길거리에 매일 아침 꼬박 보였던 환경미화원도 없다. 그래도 오고 가는 사람들은 있어 쓰레기는 주인 없이 속속 더 쌓였다. 아름다운 자연! 을 기대하고 온 내게 쓰레기가 눈에 자꾸 거슬렸다. 어쩌겠나. 나는 선한 시민이니까 하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어떠한 대의나 공공정신이라기보다는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넓은 해변이지만, 우리 집 근처 자주 산책 가는 곳만이라도 깔끔해지길 바랐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주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매일 일하다가 머리 식히러, 또는 쉬는 날 가볍고 가뿐한 마음으로 갔던 산책은 양손 가득 쓰레기로 점령당했다. 게다가 이 시절, 다른 사람이 쓰던 물티슈나 마스크는 더 줍기가 꺼려졌다. 산책길에 비닐장갑과 집게(둘 중 하나만 하자) 그리고 봉지를 가지고 가야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왜 사람들은 바다에 와서 폭죽을 터뜨리고, 그대로 두고 가는 걸까? 아이에게 폭죽만큼, 함께 논 자리를 치우는 것은 중요한 배움이 될 텐데, 왜 천하의 깔끔한 분들이 집 바깥에서 무심코 쓰레기를 버리시나? ) 나의 산책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꺼려졌다. 아니 이 넓은 해변에 쓰레기통도 없고, 치우는 사람도 없고, 해변은 늘 영 못 봐줄 정도는 아니지만, 눈가는 데 마다 쓰레기가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남편은 왜 이 쓰레기를 집까지 가져오는지 못마땅해했다. 쉬러 그냥 갔다 오지 쓰레기를 한가득 가져와서 우리 쓰레기통에 넣어 놓으면 치우는 사람은 결국 남편이라는 이야기. 분리수거 가능한 쓰레기는 내가 직접 분리수거 함에 넣고, 쓰레기 봉지가 쓰이는 쓰레기는 작은 것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또 남편은 그만큼 치우면 또 그만큼 생긴다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저녁 9시 뉴스나, PD 수첩에 나올 정도의 쓰레기 천지는 아니었다. 나는 점점 더 쓰레기를 주워야 한다는 생각과, 그냥 별생각 없이 바다를 걷고 싶다는 마음이 겹쳐 바다를 봐도 복잡했다. 그리 심각한 상황도 아니고, 사실 내가 줍는 것은 표도 안나 누구도 모를 양인데, 내 마음은 왜 회오리인가?
이제 바다를 보러 가는 산책이라기보다, 쓰레기를 하루라도 주우러 가지 않으면 뭔가 직무 유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론 안 되겠다. 같이 할 사람을 구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디서 구하나, 내가 기댈 수 있는 창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가서, 같이 쓰레기 주울분 공고를 내었다.
<SNS 올린 글>
“완도군 신지도에 온 다음 약속. 하루에 한 번 삼십 분은 바다에 나가고, 나갔다 들어올 때 쓰레기를 주워온다. 처음엔 다 주우려 했지만 역부족으로 정말 바다에 휩쓸려 들어가면 바다 생물이 먹거나 다칠 위험이 있는 물가 쪽 것들만 주워와도 다 못 줍는다. 짧은 산책이 플로깅으로 전도되어 질리지 않게 한 번에 주울 것만 주워오는데, 이렇게 해선 역부족이다.
썩지 않는 스티로폼과 나일론 끈, 웬 농약병이 떠내려 오는 것인지 주워도 주워도 있다. 쓰레기 봉지라도 지원받으면 좋겠다. 혹시 평일 점심 30분, 주말에라도 같이 하실 분 있으면 디엠 주세요. 명사십리 해수욕장 주변에 인연 있으신 분 공유 부탁드려요.
#명사십리해수욕장 #플로깅 #완도 #해수욕장쓰레기 #해양치유완도 #쓰레기줍기 #myungsasimri #myungsasipribeach #plogging”
많은 친구들이 호응해 주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겹치는 친구들도 있지만, 36명, 64명 총 100명 좋아요 해주었다. 또 십여개의 응원하는 댓글이 달렸다. 와. 이렇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나는야 착한사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쓰레기 줍기로 이어지는 인연은 없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너무 먼 당신. 클릭만하고 별달리 활동 안하는 슬랙티비즘이 아니라, 내가 너무 완도에 무연고이고,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sns로 닿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응원을 받은 것 만으로도 그동안 쓰레기 주우면서 쌓은 스트레스는 날아갔다.
다음 단계, 안되겠다! 완도 현지에 살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회원을 모으는 인터넷 까페에 가입했다. 여기는 명사십리 산책 사진도 자주 올라오고, 완도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니, 어디 시도해 보자 싶어, 플로깅 활동하시는 분 아시냐는 질문과 함께 쓰레기를 줍고 싶다는 의지를 알렸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마리님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완도에 좋은 사람 이사와서 좋다.’는 응원의 말과 하트 이모티콘은 받았지만, 함께 쓰레기를 주울 친구는 못만났다.
칭찬도 받았겠다 계속 줍기를 하긴 해야겠는데, 혼자 하자니 기운이 안난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바람이 불었고, 엄청난 해양 쓰레기들이 바다끝에서 몰려왔다. 스티로폼이 주재료인 부표와 나일론 그물들 목장갑, 노끈들이 명사십리 백사장에 끝없이 펼쳐 졌다. 띠로리. 이걸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완도에서 처음 3중의 밀려오는 큰 파도를 보며(보통 명사십리 해변의 파도는 모래사장에 부서지기 50cm 앞에서 너울지는 잔잔한 파도다) 난 못해!를 속으로 외쳤다.
그 다음 한 이틀은 바다에 안갔다.
이틀 안나간 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바닷가에 널부러져 있던 쓰레기들은 마댓 자루에 차곡히 부려져 있었고, 며칠 뒤, 큰 바퀴 자국을 남긴 차량이 쓰레기를 모두 데려 갔다.
‘아. 치우는 분들이 계셨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여기 주민들은 바다가 이리 더러워져도 쳐다도 안보는 군. 흥! 했네’ 싶었다. 나를 지켜보고 있던 남편은 또 “거 봐. 다 여기도 치우는 사람 있어.”라며 나의 성급한 판단을 놓치지 않고 일격을 가했다. 어떤 분들이실까, 공공근로로 일하시나? 아니면 자원활동으로 하시는 분들일까? 초콜렛공장의 움파룸파? 어쨌거나, 제때 효율적으로 다다닥 일하고 사라지는 분들인 것 같다. 나도 그분들을 보고 이것 저것 여쭤보고 싶은데, 이제 껏 큰 쓰레기가 두 번 자루에 부려졌지만, 나는 이제껏 그분 들을 보지 못했다. 왜 내 눈에는 안나타나시는 건가? 공공근로 하시는 것 같은 조끼 차림의 할머니에게 물었지만, 그 할머니는 나는 모른다. 하셨다.
시간을 더 갖기로 했다. 내가 쓰레기 줍는 사람을 한 번도 이 바다에서 보지 못한 이유는 줍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라, 내가 하루 중 아주 짧은 시간, 다른 사람이 일 안하는 시간에 바다에 갔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내 나름엔 짧아도 매일이라 바다와 일상을 함께해요 라고 말하지만, 바다 입장에서는 내가 바다의 정말 일부분만 아는 것일 것이다. 이제 완도 40일차다. 성급히 생각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무언가를 바꾸려고 애쓰다가 내 패턴을 벗어나 무리하지 말고, 시간 날때 마다 찾아가 바닷가와 사람들을 관심갖고 살펴야 겠다. 생각보다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조개나 모랫고둥이 아닌, 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나는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쓰레기 줍는 거는 포기했냐고? 아니다. 한 달사이 내 쓰레기 줍기는 좀 더 내게 지속가능한 형태로 다듬어졌다. 바닷가에 나서는 길에는 줍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변으로 걸으면서 가능한 바다 가까이 물빠진 모래펄 위에 물고기가 삼키면 안 될 작은 플라스틱 조각, 걸리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그물을 위주로 두 손이 찰 때 까지만 줍는다. (모자라면 가끔 정든 로울이의 손도 빌리고)
내 줍기가 바다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은 작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시 바닷가 산책을 즐기게 되었고, 가끔 어떤 경위인지 오랫동안 바다에서 살아 바다와 일체된 쓰레기는 새롭게도 보여 이리 저리 사진을 찍게도 된다. 그런저런 사연을 품고도 여전히 물비늘로 반짝이는 바다가 예쁘다.
그리고 나는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완도 명사십리에 와서 혼자 줍기 외로워 누군가 함께 할 사람을 찾는다면, 반갑게 손을 흔들어야지. 여기 같이 할 사람 있어요~ 나를 잘 찾게 그 사이 해쉬태그도 꾸준히 걸어 놓고, 오프라인 사람도 더 많이 만나봐야지. 완도에 머무는 시간 1년이 훅 지나 갈 것 같다. 혹시 이글 일고, 나네나 하시는 분. 연락주세요. 우리 쓰레기 친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