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엄마. 말로 해결하는 아들
아들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속상할 때, 기분이 좋아 흥분될 때,
특히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빨라진다. 행동도 커진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온전히 다 쓰고 나면 함께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반면, 나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 속상할 때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다물어 버린다. 화, 짜증은 마음속 깊은 곳에 꾹꾹 밟아 두고, 나오지 못하게 꽉 잠가 버린다. 기분이 좋을 때는 가슴 깊은 곳에서 큰 파도가 치며, 눈물이 나올 때도 있는데, 그때는 눈물을 숨기느라 바쁘다.
아들은 본인의 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나서, 빠르게 사과한다.
"엄마, 미안."
"미안합니다."
그 순간 난 내 감정을 마음속 깊은 곳에 쑤셔 놓고 있기 때문에, 아들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왜 저렇게 화를 낼까?'
'저게 저렇게 화를 낼 일인가?'
'갑자기 확 기분이 바뀌었다고 바로 미안하다고 하면, 그 앞에 있는 나를 뭘로 생각한 건가?'
이런 생각들에 깊숙이 빠져 아들의 말에 대답하지 못한다.
조용히 있다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 한다. 가끔 꾹꾹 밟아 놓은 감정들이 흘러넘쳐서, 할 말을 다 해버릴 때가 있는데, 늘 후회가 되었다. 내 감정 쓰레기통이 이불 킥 해야 하는 내 말 한마디에 빨리 차버리기에, 입을 더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미안해."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며, 눈치를 보던 아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는 나를 보고, 다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냈다.
"어떡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빨리 용서를 받아야 하는 아들은 계속 말을 이어나가지만, 나는 어떤 여유도 없고, 그 말을 따라갈 에너지도 없다.
이럴 때 오히려 나는 침묵이 편했다. 이 침묵의 시간에 나는 내 감정을 눌러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쿵쾅쿵쾅 심장 뛰는 소리, 꽉꽉 막힌 가슴속에서 숨 가쁘게 오가는 호흡 소리가 들렸다.
어느 날 이 어색한 침묵의 시간에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보였다.
너의 말로 상처받은 내가,
너에게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내 얼굴이 보였다.
짜증 가득한 미간 사이로 꽉 모인 눈썹.
분노가 이글거리는 잔뜩 찡그린 눈.
경멸의 감정이 쏟아지는 휙 올라간 한쪽 입꼬리.
"뭐 할래?"
"해볼까?"
내가 이 말을 꺼냈다는 것은 그것을 할 가능성이 80프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4년 3월, 회의 시간.
우연히 핸드폰 메시지를 읽다 항공사 홈페이지에 제주도 할인 항공권이 뜬 것을 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7월 말 출발, 8월 후반 도착 일로 찍으니 정말 저렴하게 갈 수 있었다.
출발지, 도착지, 가는 날, 오는 날, 성인 2, 소아 2, 항공권 조회
이거다 싶어 바로 항공사 회원가입,
회원 로그인.
탑승자 정보를 입력했다.
국적, 이름, 생년월일, 이메일, 핸드폰 번호 입력.
성인 2 탑승자 정보에는 신랑을.
세 번째 탑승자 소아 1에는 6살이던 아들.
네 번째 탑승자 소아 2에는 3살이던 딸.
모든 정보를 입력했다.
다음 창은 결제하기창.
필수 동의 항목에 동의.
취소 시 발생하는 수수료 관련 문구를 보고서야 정신이 든 나는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다.
"우리 7월, 4명이서 제주도 갈까요? 한 달 동안"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장이 왔다.
"콜"
답장을 확인하자마자 마지막 단계 결제하기를 눌렀다.
겉으로는 꼼꼼하고 계획적으로 보이지만, 의사 결정 시 대부분이 계획에 의해 나온 것은 없었다.
물론 항공료 결재 후의 계획은 세운다.
내 의사소통 방식이 이렇다 보니, 상대방의 말도 똑같이 해석한다.
신랑은 친구들과 또는 직장에서 좋은 곳에 다녀오면 다음에 같이 가보자고 꼭 이야기한다.
나에게 "다음에"라는 말은 2시간 이상 걸리는 원거리인 경우 이번 주말,
1시간 안팎 거리는 2-3일 내를 의미한다.
2-3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는 경우들이 쌓였다. 답답하고 조바심이 났다.
말로 표현하면, 실수하거나 틀린 말이 바로 보인다. 신랑의 "다음에 같이 가보자."라는 말은 실수한 말 또는 틀린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말로 실수하고, 말로 해결했다. 그리고 또 내 말을 기다렸고, 나는 침묵했다.
아들의 말은 많아서 실수하거나 틀린 말이 많았다. 그래서 바로잡고 싶었고, 바로잡기 위해 말을 했다. 아들은 다시 말로 화를 냈고, 또 실수를 했다. 이렇게 우리의 의사소통은 서로 꼬리 잡기처럼 돌고 돌다 마침내 에너지가 다하면 침묵했고, 아들은 침묵을 못 견뎌했다. 아들의 에너지가 다하면, 아들은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 말을 퍼붓고는 방으로 들어가서 기절한 듯이 자버렸다.
말은 실수하기 쉽고,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나는 말을 조심해서 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고, 대답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