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맘만 Jun 30. 2023

엄마의 사춘기는 없었다

잘못 채워진 첫 단추

"나 잘 몰라."


"음... 나 잘은 몰라."

"내 생각에는..."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할 차례가 되면 내 시작은 대부분 이렇다. 하루 한 번은 잘 사용하는 가전제품도 누가 그거 좋아?라고 물으면, 

"음... 나는 매일 잘 써. 신랑도 하루에 한 번씩 쓰고. 엄마도 한 개 사드렸어. 근데, 안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라. 너도 체험 한번 해보고, 고민해 봐." 정도로 대답한다. 

묻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거 좋아." 이 한마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강추"라는 말조차 "나는 강추"라고 꼭 여지를 둔다. 


"강추"라는 말과 "나는 강추"라는 말은 아주 많이 다른 말이다. "나는 강추"라는 말은 개인적인 별점은 5점 만점에 5점이지만, 전체 평균 별점은 4.3 정도라는 말이고, "강추"라는 말은 전체 평균 별점이 4.9점이라는 말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여행을 다녀온 뒤, "잘 다녀왔어?"라고 묻는 말에는 참 난감하다. 

"제주도는 사랑이지. 가서 많이 쉬었어. 그러다 보니 편한 숙소가 좋더라. 이번에 머물렀던 곳은 구옥에 깨끗하게 지어진 곳이었는데, 창문이 너무 예쁘게 나있고,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 돌담, 귤나무가 또 작품이었어. 나중에 10년 후쯤 그런 집에서 책 보고, 쉬면서 매일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어. 날씨도 따뜻하고, 햇볕도 좋았고." 이렇게 대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장소, 사람, 시간에 따라 대답은 달라지는데, 대부분 대답은 "좋았어.", "잘 다녀왔지."정도이다. 

질문을 하는 상대방이 예의상 묻는 말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크다. 내 대답이 성의 없어 보이면 안 되기 때문에, 엄지 손가락을 높이 올려 든다거나, 눈썹을 올려, 눈을 크게 뜨며 빠르고, 간결하게 대답하는 쪽이 대부분이다. 


간혹, "숙소 괜찮은데 추천해 줘."처럼 구체적인 답변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정말 생각이 안 난다. '아, 진짜 좋았는데, '이름도 생각이 안 나고, 대충의 위치도 생각이 안 나고, 심지어는 뭐가 좋았는지, 왜 좋았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러면 대답한다. 

"나 잘 몰라." 


반면, 함께 여행을 다녀온 신랑의 경우, 구체적인 장소, 날짜, 금액까지 정확하게 기억난다. 여행지 가기 전 유튜브, 블로그 등을 즐겁게 찾아보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잊지 않고 사진으로 꼭 남긴다. 다녀와서는 엑셀 파일에 금액을 남기고, 사진들은 자동으로 지도에 저장이 되어, 그다음 여행지는 사진 개수가 많이 없는 곳으로 정해지는 식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에서 무언가를 잘 안다는 일은 위험한 일이었다. 내 일 쳐내기도 바쁜 시간에 누군가의 책임을 나누어 갖는다는 부담감. 도움을 주기는커녕, 피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 몫한다. 매일 스스로에게도 "나 잘 몰라."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다.


 


"나 그거 잘 알아."



국민학교 5학년 교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모아 꽉 잡아 비틀고 다시 남아 있는 머리카락들을 모아 올려 비트는 디스코 머리를 자주 하던, 눈이 반들반들한 깡마른 12살. 국민학생이었던 내가 생각났다. 

뭐든 잘하고 싶었던 12살 어린 학생은 일어서서 큰 소리로 발표를 하고 있다. 친구들이 2-3명씩 모여 킥킥 대며 흘긋 나를 보고, 얼핏 야유 비슷한 소리도 들렸다. 선생님은 뭐라 말하며, 나를 앉히셨다.


그 후로 난 많이 바뀌었다. 


최소한으로 말하고, 가급적 눈에 띄지 않는 아이가 되기로 했나 보다. 조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날에서부터 불과 몇 년 전.

학교에 큰 손님이 많이 온다고 했다. 깨끗하게 교실 청소를 하고, 교실 뒤 편 금붕어가 다니는 어항도 만들었다. 수업 시간에는 큰 소리로 발표를 하라고 했다. 손도 자주 들라고 했다. 그렇게 했다. 교실 뒤쪽 많은 손님 중에 크고 좋은 의자에 앉아 있던 손님 한 명이 나를 불러 쉬는 시간에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주위에 있던 나머지 손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똑같았다. 목소리 크기, 발표 횟수, 눈빛, 자세 아무리 생각해도 똑같았다. 그런데 나를 보는 눈빛이 다르고, 웃음의 의미가 달랐다. 




난 바닷가의 모래 한 알 일 뿐이라 생각했다. 








선생님의 질문마다 손을 드는 아이가 있다. 큰 소리로 대답하고, 주목받기를 원하는 아이, 선생님의 눈빛, 사랑, 인정을 원하는 아이 뒤에 서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라는 자격으로 아들을 보고 있었을까? 




아들은 선생님의 질문마다 다 잘 아는 듯 자신 있게 손을 들었고,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속상해하는 몸짓과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난 유독 크게 들렸다. 말할 기회가 주어지면, 큰 목소리로 신나게 아는 것들을 말했다. 

아들의 엄마 자격으로 참관 중이었던 나는 많이 무서웠다. 표정은 점차 굳어졌다. 많이 불편했다. 잠깐이라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아들 뒤에 있던 나는 어디 다른 곳으로 숨고 싶었다. 


아들은 뭐든지 자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가 다 안다고 했다. 아들은 정말 잘 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기에, 영특하고 똑 부러지는 아들이었다. 엄마 아빠가 선생이라서 잘 키웠다고 했다. 그 말은 나를 더 무겁게 했고, 힘들게 했다. 





표정은 더 굳어졌고,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생각,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 달라도 너무 다른 아들.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