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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뭔가를 하고 움직여야 하는, 가만히 있으면 불안증이 생기는 병이다. 노는 방법을 몰라 쉬면 불편한 부작용이 있다. 우울감과 무기력은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세수하는 것도 귀찮고 일어나는 것도 귀찮고 중력의 영향을 받아 방바닥과 하나 되어 누워있게 된다. 원래 가진 지병에 새로운 증상이 겹쳐 일어날 기운은 없는데 마음은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지랄 맞은 상태여서 피로가 느는 날이었다.
무기력이 이기는 날엔 오래 누워있고 지병이 이기는 날엔 마트에 가든 책을 읽든 조금은 움직인다. 가만히 있는 방법을 모르고 뭘 해야 할지도 몰라 이것저것 손을 댄다. 재봉질을 했다가 씨앗을 심었다가 글을 썼다가 청소를 했다가…. 최근 며칠은 그림을 그렸다. 유튜브를 보고 남들은 쉽게 그리는 그림을 똑같이 따라 했는데 다른 그림이 되었다. 몇 개 따라 하다 마음대로 하나를 그렸다. 오로라가 흐르고 달이 떠있는 하늘, 어두운 들판에 꽃들이 피었지만 잎이 없는 앙상한 나무가 다섯 그루 서 있는 그림이다. 본래 의도는 잎이 있는 나무와 꽃이 더 만발한 들판을 그리려고 했으나 결과물은 그리 되었다.
완성된 그림을 벽에 걸어 보고 있자니 그림에 내 마음이 들어있구나 싶었다. AI에게 그림에 보이는 심리가 어떤지 물었다. 내 마음을 꿰뚫는 것처럼 작자의 의도를 잘 파악했다. 밤의 앙상한 나무가 말해주듯 어둡고 고독한 상황에서도 달과 꽃으로 희망을 찾으려는 내면의 노력이 보인다고. 잎을 그리고 싶었지만 채우지 않은 건 외로움과 슬픈 내면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서였다. 꿈에서도 내 현실과 상황이 드러나듯이 그림에도 내 마음이 드러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는 것 같은 사람의 모든 말이나 행동에는 다 의미가 있다. 그 안에는 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집약되어 있지만 모르고 지나치거나 늦게 알아차릴 뿐이다. 지금 왜 이러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날들에 굳이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 멀리서 보면 전체가 보이지만 상황에 근접해 있을 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그런 거다. 지나고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지금의 서글픔도 언젠가는 알게 되고 이해되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