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마음이 괴롭고 힘든 지 3년째, 이제 마음의 곤고함은 적응되었다고 여겼는지 올해부터는 몸의 괴로움까지 더해졌다. 봄부터 어금니 통증을 시작으로 난데없는 허리 통증이 오더니 자다가 무릎이 움직이지 않는 증상도 생겼다. 평소 책을 많이 읽는데 활자가 번지고 흐려 잘 보이지 않는 노안까지 연달아 왔다. 일시적인 증상인가 싶어 지켜보다가 치과에 갔으나 내 통증과 상관없는 다른 치아에 관심을 보이며 충치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껏 한 번도 문제없던 스케일링으로 한 달이 넘도록 잇몸 전체가 아픈 증상을 겪기도 했다. 다른 치과에서는 중치는 치료할 필요가 없고 아픈 치아가 특정되어야 하는데 정확히 어느 치아가 문제인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 큰 문제가 아닌듯하니 어떤 치아가 아픈지 정확히 확인되면 그때 크라운을 씌워야 한다고 했다. 여러 달 동안 씹을 때마다 아프고 불편해서 왔는데 큰 문제가 아니라 하고 두 치과가 서로 다른 결과를 말해 나으려고 갔다가 걱정만 안고 돌아와 불편한 채로 지내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주 2회 피아노 교습은 손가락과 팔의 통증이 되었고 조금 아프던 허리는 어느새 의자에 앉아 있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되었다.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도 효과가 없고 나날이 증상이 온몸을 옮겨 다니는 것 같아 마음이 불안했다. 이런저런 통증 걱정을 한의원에 말했는데 과도하게 예민한 사람 대하듯 해서 상처가 되었다. 통증을 잘 본다는 다른 한의원을 찾아갔다. 초진에서 많은 이야기와 설명을 들었고 좌식 생활과 의자에 오래 앉아 있는 생활을 접으라 했다. 식사 후 걷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을 때까지는 되도록 누워 지내라고 했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평소 같지 않게 가만히 있어도 몸에 땀이 찼다. 에어컨 없는 집에서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허리의 통증 하나로 씻고 화장실 가는 것조차 힘든 생활에 인간 답지 못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가 바르지 않아 아픈 게 당연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치료에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디스크인가 싶어 정형외과를 갔는데 다행히도 디스크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손가락이 저리는 증상이 생긴다면 류마티스 내과에 가야 한다고 했다. 생리가 불규칙해지기 시작한 터라 호르몬의 불균형 때문에 아플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처음 겪어보는 증상에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상일까 싶었다. 어깨가 안 돌아가고 얼굴에 열이 나는 게 갱년기 증상인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검색해 보고야 오만가지 증상이 있고, 사는 게 아니라는 후기를 접할 수 있었다. 어떤 의사의 영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갱년기 증상인 줄 모르고 내과, 정형외과, 한의원 등 여러 병원을 다니며 다른 진단을 받는다고 했다. 폐경도 안됐고 열이 오르는 증상도 없어서 왜 이렇게 한꺼번에 아픈 건지 당황스러웠는데 혹시 이게 갱년기 증상인 걸까? 마음의 괴로움을 잊으려 여러 날 동안 글쓰기만 집중한 뒤에는 온몸에 증상이 가중되었다. 내 힘듦을 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든 행동이 증상으로 더해졌다. 어쩌다 발가락을 문턱에 찧는 상처 하나에도 서럽고 아픈 법인데 마음의 우울에 생전 몰랐던 온몸의 통증까지 얹어지니 살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허리의 문제는 머리를 감거나 양말을 신고, 발톱을 깎기도 힘든 상태로 만들어 짜증 나게 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해도 내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알뜰하게 생활하느라 지출을 통제하는 삶인데 예상에 없던 병원비가 드는 만큼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병원도 가지 않게 되었다. 나빠지지 않고 비슷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심신의 고달픔은 끝도 없는 무기력으로 끌어내렸다.
우울보다 힘든 것이 무기력이라더니 손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어서 그냥 누워 있고만 싶었다. 평소에 가만히 있지 못해 집안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성격을 이길 만큼 무기력은 강력했다. 생각 없이 누워 멍하게 영상만 보았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시중에 우울이나 실패와 관련된 책은 많고 그 안에는 주로 청년을 다루고 있을 뿐 사회적으로 기반을 다지고 자리를 잡는다고 평가되는 중년의 우울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전국 지자체가 나서서 청년정책 경쟁을 하기에 청년기에 방황하고 중년이 되면 다 안정기에 접어들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나이로 진입하니 아니었다. 인생의 고난은 나이와 비례했다. 더 많은 좌절과 상처가 따라왔다. 청년기엔 알 수 없던 몸의 노화까지 겹쳐 온몸이 이렇게 아플 것도 몰랐다. 20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치열하고 힘들었지만 40대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위축과 열등감이 함께 자랐을 뿐이다.
청년, 신혼부부, 노인정책은 있지만 중간에 낀 중년 정책은 없다. 비혼의 중년은 신혼도 청년도 부모도 아니어서 복지 대상에도 포함되기 어렵다. 전 국민에게 지급된 재난지원금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국민임을 느낀다.
중년에도 여전히 새로운 직장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많지만 능력보다 냉정한, 지원서에만 사라진 나이 제한으로 기회조차 생기지 않는다. 인생의 힘든 시간을 홀로 견디는 이가 많은데도 중년 정책을 자랑하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 척추같은 중요한 세대라면서도 각자도생으로 내몰리고 사회적으로 자리 잡는 나이라는 이유로 힘들고 서러움을 말하면 낙오자가 된다. 인생의 좋은 때란 없는지도 모른다. 모든 시기가 고비이고 도장 깨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 나이가 되면 안정되고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앞 세대가 주입한 희망은 그 나이에 도달하고야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열심히 사는 것과 삶의 성과는 비례하지 않는다. 사는 동안 계속해서 힘듦은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