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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이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 꿈이 맞을 것 같다. 모두가 꿈을 꾸지만 자고 일어나면 금세 휘발되고 기억에 남지 않아서 꾸지 않았다고 여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떤 꿈은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 반면 어떤 꿈은 눈뜬 순간에는 기억났다가 몇 시간 뒤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으니까. 어릴 때는 기억에 앞뒤 맥락이 없는 개꿈을 주로 꿨다. 그래서 꿈에 대한 남다른 기억이 없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독 꿈을 많이 꾼다. 전에는 개꿈이어서 꿈이라는 걸 금방 파악했는데 요즘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릴 정도로 현실과 연결되는 꿈을 꾼다. 꿈에서도 긴장하고 걱정하는 현실의 내가 나와 수면 중에도 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가끔 인상적인 꿈을 꿀 때도 있다. 내 주변 사람만 꿈에서 봤는데 어느 날은 대통령이 나오거나 연예인과 친밀한 관계인 꿈일 때도 있다. 대통령이나 화장실 꿈은 좋은 꿈이라기에 그런 날은 복권을 사지만 숫자 하나도 맞은 적이 없었고 좋은 일이 생기지도 않았다. 어떤 꿈은 나쁜 꿈이라고 조심해야 한다는 해석이 붙기도 했지만 그 또한 별 일이 없었다.
기억에 남는 꿈을 꾸고 해몽을 검색하다 보면 해석이 각양각색이다. 돼지꿈을 꾸면 재물과 관련된다고 하지만 돼지를 봤다고 다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돼지가 혹은 내가 뭘, 어떻게,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다르며 길몽이거나 흉몽일 수 있다고 한다. 과거엔 흉몽이라고 해석되던 대상이 시대에 따라 좋은 해석으로 달라지는 걸 보고 붙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신년에 친구를 따라 용하다는 선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점을 보러 다닌다며 동생이 잘 본다고 소개한 집이라며 가족 운세를 점치러 가는데 같이 가보자고 했다. 평소에 보던 깃발이 붙은 어느 오래된 골목 안, 연배 있는 무당이 아니라 고층 아파트에 신당을 차린 MZ 무당이었다. 친구 부부와 어린 자녀의 운세에 덧붙여 첫째가 관직에 오를 팔자고 공부에 뜻이 있으니 계속 시키라거나 둘째가 외국에서 살며 크게 흥할 팔자라는 말을 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들에게 대운이 들었다니 좋겠다 싶었다. 점집을 나오면서 친구는 애들은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고 했다. 제왕절개가 많은 지금은 아이에게 좋은 날과 시간을 미리 받아서 출산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의문이 생겼다. 그럼 21세기에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 팔자를 타고나지 않았을까. 친구에게 물었다. “사회적 참사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태어났을 텐데 그들은 왜 일찍 별이 되었을까? 그게 맞는걸까?”
언젠가 대통령이나 유명인과 동일한 사주를 갖고 태어났거나 같은 이름과 한자를 쓰는 사람의 인생을 추적한 다큐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같은 사주여도 명예를 얻어 화려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험난한 일생을 사는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았다. 가끔 방송에서 대통령이나 이름을 떨치는 인물이 등장할 때 태몽이나 사주를 풀며 '성공할 운명'이라는 설명을 장황하게 할 때가 있다. 그걸 보면 큰 사람이 될 운명은 갖고 태어난다는 믿음이 생긴다. 과연 그런가?
엄마는 동생을 임신했을 때 좋은 태몽을 꿨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 태몽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크게 되고 성공할 아이라고 말했다. 내 태몽을 넣어도 범상치 않은 해석이 나오고 5가지 복을 가진 큰 아이가 태어난다고 나온다. 오빠는 재벌들에게 많다는 막 쥔 손금의 소유자지만 우리 중 누구도 무난하게 사는 사람이 없다. 모두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인생에 발목 잡혀 배신당하고 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고수가 끊임없이 생겨 저렇게 나쁜 운은 없다고 생각할 정도다. 실력을 인정받고 잘 다니던 직장에서 힘 있는 한 사람에 의해 어느 날 갑자기 나락으로 내몰려 극심한 스트레스로 난생처음 점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이모가 잘 안다는 무당이었지만 갈급한 이의 심정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 큰돈을 쓰기도 했다.
가끔 뭔가 남다른 꿈을 꿀 때면 해몽을 물어본다. 재물운이나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는 해석은 손쉽게 복권을 사게 만들지만 인공지능이 답하는 수많은 좋은 해석 문구에 혹해 놓치기 쉬운 ‘꿈이 미래의 예언보다 무의식이 보내는 희망 신호일 수 있고 절대적인 해석이 아니’라는 말이 핵심일지 모른다. 내가 크게 느끼는 삶의 맥락, 감정상태, 인생의 경험들이 망라된 내 잠재의식이 꿈에서도 희망을 찾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이제는 남다른 꿈에 호들갑 떨지 않고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인생을 기대하지 않는다. 꿈은 그저 꿈일 뿐일 때가 더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