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한때 바이오리듬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다. 좋은 기분과 그렇지 못한 상태가 일정 주기로 반복된다며 일이 안 풀리거나 우울한 감정이 들면 “오늘은 바이오리듬이 안 좋네.”라고 말하곤 했다. 좋음과 나쁨이 곡선을 그리며 오르내리는 그래프를 보면 흐림과 맑음이 교차되는 날씨처럼 나쁘기만 한건 없다는 생각에 공평해 보이기도 했다. 과거의 바이오리듬처럼 어제는 별로였지만 오늘은 좋은 날이면 인생이 참 무난할 텐데…. 좋은 날이 오래 지속된 기억은 없는데 안 풀리고 힘든 날은 길어서 고장 난 복사기처럼 멈춤 버튼에도 끊임없이 원치 않는 출력을 한다. 힘듦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날이다. 사람이 어디까지 힘들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처럼, 모든 불행에게 호구라고 소문이라도 난 것처럼 시련이 몰려드는 시간을 지나는 중이다.
살면서 “우울해” 혹은 “죽고 싶어”라는 말은 누구나 하고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해도 잠시 후, 며칠 후, 한참을 지나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마음이 상처받고 힘들 때 쓰는 관용구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래서 “야! 다 지나가.”, “그건 힘든 것도 아니야.”, “그런 정신 상태로 어떻게 살려고 그래?” 같은 말로 무시되곤 한다. 너무 걱정했는데 막상 닥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많은 경험처럼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말 괜찮아졌던 과거를 통계 삼아 너무 예민하고 쓸데없는 걱정으로 에너지를 갉아먹는 자신을 자책한다. 늘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무사히 지나고 난 후, 안전이 확인된 상태여서 그런 것이지 당시는 세상의 큰 짐과 어려운 문제를 푸는 사람처럼 어렵고 무겁고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조차도 남들이 하는 말을 자신에게 아무렇지 않게 하며 나를 질책하기만 했다. 그것이 나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줄도 모르면서.
사는데 크게 지장은 없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감정에 이것이 정상적인 것인지, 내 마음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궁금해지곤 했다. 드라마에 보면 정신과 의사와 내담자가 소파에 앉아 느긋하고 다정하게 상담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내과처럼 일생 동안 주기적으로 가는 과목과 달리 살면서 경험할 일이 적은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인상은 그렇게 심어진다. 차분하고 여유롭게 마음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구나. 정신의학과에서 상담 받으면 된다는 이미지가 생긴다. 전문가에게 내가 모르는 나의 마음에 대한 상담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되던 때, 마침 동료의 모친이 다니는 병원이 있는데 효과가 있더라는 말에 추천을 받아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도 더 걸리는 은평구의 어느 병원에 갔다.
난생처음 방문한 그곳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환절기에 감기 환자로 넘치는 동네 내과처럼 대기 환자가 무척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상담받으면 대체 얼마를 기다려야 하나 싶은 막막함이 생겼다. 접수를 하고 대기하는 동안 진료실 문을 보고 있었는데 패스트푸드 매장 뺨치게 회전율이 높았다. 내과에서 진료받는 것처럼 5분도 안되어 환자가 계속 바뀌었고 오래 기다리지 않고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어딘가 명확한 증상이 있어서 가는 경우에는 아픈 증상을 바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긴 정신과인데 의사는 내과인 듯 질문했다. 내가 뭔가를 말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질문하고 대화하게 될 줄 알았으나 앞서 환자가 금방 들어왔다 나가고, 대기 중인 환자도 많다는 불안감에 나도 5분 안에 빨리 말하고 나가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생겼다. 의사는 환자를 보는 게 아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속기사처럼 내가 하는 말을 타이핑하기에 바쁜 모양이었다. 그 분주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알 수 없는 문장을 쏟아냈다. 말하면서도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속기하던 의사는 몇 가지 검사를 할 거고 검사지를 드릴 테니 다음 진료 때 해 오라는 말을 했다. 그러고는 처방을 내리며 복용하라고 했다.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간호사의 진행에 따라 검사를 받고 처방전을 받고 나오며 ‘이게 뭐야. 이게 정신과 진료야?’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고 가는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두서없는 말 몇 개 받아 적은 게 전부고 어떤 설명을 들은 것도 아니다. 검사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무슨 약을 먹으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처방전과 검사지를 들고 그대로 집으로 왔다. 마음 불안한 사람이 찾아간 병원에서 더한 불안감을 주는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찾아 간 것을 후회했다.
한동안 헤맨 뒤에 내가 기대한 상담이 정신과가 아님을 알았다. 여러 경로를 찾고 검색하면서 심리 상담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1주일에 1번 1시간의 상담을 통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기대한 건 이거였는데 드라마는 정신의학과를 그런 이미지로 연출한다.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약물 없는 상담이 필요한 사람도 있는데 어떤 설명도 없이 무조건 약물 처방을 하는 병원에 거부감이 생겼다. 심리 상담을 처음 받던 날, 낯선 이에게 내 마음을 얘기하는 게 어렵고 힘들었지만 다급하게 진행되지 않고 충분히 말할 시간이 주어지고 규칙적으로 만나다 보니 마음이 열리고 대화가 잘 진행되었다.
여러 번의 상담을 통해 내가 평가한 나, 내가 몰랐던 나, 과하게 자책하던 나를 알게 되었다. 상담자는 다른 내담자에 비하면 이건 고민 축에도 들지 않을 정도로 정상의 범주에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높은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고, 우울과 무기력으로 가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고, 자신을 연민할 영역을 놓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싫어한 내 모습이 그럴 게 아니라는 말, 에너지 레벨이 높은 사람이라는 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다. 은연중에 자동화된 부정적 생각과 그에 따른 마음 흐름에 자주 낙심하지만 마음이 심해를 헤맬 때 스스로 나를 끌어올리는 것도 알았다.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때로 힘들어 눈물을 펑펑 쏟게 되는 날, 이상하게도 그 끝에는 ‘그래도 나는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순간순간 죽을 것 같은 마음 한편에서 내가 나를 살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