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실망은 비례한다

#14

by 마릴라 Marilla

타로로 마음이 찜찜하고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어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걱정이 있어서 타로를 봤는데 도움이 안 됐어. 두 번이나 봤는데….”

“ㅋ”

덧붙여진 내용 없이 달랑 초성 하나로 끝나는 답문에 순간 혈당처럼 화가 올라왔다.

“너 뭐야? 싸패야? 이게 웃겨?”

“그냥 재미로 보는 거잖아. 근데 나도 한번 보고 싶긴 하네.”

싸패(싸이코패스)라고 쓰고 잠시 망설였다. 이건 너무 강하고 불쾌한 표현이다 싶어 지웠다가 내 기분상태를 전달하기에 적절한 단어가 그것뿐이라 그대로 보냈다. 연달아 온 답장에서 더 할 말이 없어 그대로 문자를 지웠다. 미안하다거나 혹은 ‘어떻게 싸패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화를 내리라는 예상만 있었다. 그래야 다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오래된 친구라도 자주 보고 연락하며 지낸 시간보다 사회생활을 하고 다른 지역에 사는 성인의 시간이 늘어나면 이름만 친구인 기간이 길어진다. 서로가 기억하는 친구의 모습은 옅어졌거나 사라졌을 수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친구를 기억하고 기대하곤 한다. 그 기대와 실망은 항상 비례해 왔다. 그럼에도 나는 왜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을까.


이틀 전에 그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인 경우는 흔치 않다. 무소식은 실제로 삶이 팍팍하고 힘들거나 여유가 없는 경우일 때가 많다. 친구는 아무 일 없다고 말하지만 오랜만의 전화에 걱정이 있어 전화했음을 알았다. 딸이 자퇴해서 한동안 힘들었다고 했다. 서로 자주 통화하지 않지만 가끔 전화할 때마다 친구는 딸을 원수처럼 말했다. 사람 힘들게 하는 상사 험담 하듯이. 그렇게 공들이는데도 말을 안 듣고 반항하는 딸이 못마땅하다며 남처럼 말하는 친구에게 “애한테 너무 집착하지 마, 아무리 그래도 딸한테 그런 말을 하니?”같은 말 외엔 할 수 없다. 설령 딸이 문제라도 같이 욕할 순 없지 않은가. 나는 친구의 일방적인 통화가 불편했으나 이틀 전에 본인이 힘들다고 전화했으니 상대의 힘듦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보낸 문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걱정이 있어서’인데 그 부분은 외면하고 ‘재미로 본 것’으로 판단하고 웃는 모습에서 어쩌면 친구가 딸과 대립하는 것도 공감능력의 결여가 아닐까 싶었다.


문득 과거의 어떤 날이 생각났다. 나는 이 친구와 8년 동안 연락을 끊었었다. 안부든 뭐든 어떤 문자에도 자기 상황에 대한 동문서답식의 단답형 문자로 대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결혼하면 여력이 없다느니 인간관계에 무심해진다느니 같은 기혼자들의 말을 들었던 터라 엄마가 돼서 그런가 보다 싶었지만 그런 이유에도 정도가 있었다. 그때도 충분한 감정과 의사 표현을 했는데도 그런 식의 대화에 마음이 닫혔고 나중에 연락처를 바꿔도 알려주지 않고 연락처를 지웠다. 그러다 작년에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앞선 얘기처럼 무소식은 희소식이 아니다.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다시 연락을 한 시점은 내가 불행의 터널을 지나는 중이었다. 힘든 상황을 겪으며 옛 친구를 떠올리게 되고 남의 사정도 고려하게 된다. 연락 끊긴 시간 동안 친구에게도 여러 일이 있었고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했다. 그제야 내 생각이 났고 자신의 무심함이 후회되더라고 했다. 그래서 연락처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는데 못 찾았다며 너무 반가워했다. 오늘 친구의 문자를 보고 잊어버렸던, 연락을 끊기로 마음먹은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너무 감정적으로 결정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마음을 읽지 못해서 더 친구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관계를 회복한 이후로도 나는 친구에게 내 얘기를 하지 않았다. 딸의 험담은 해도 상대의 마음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친구에게 내가 더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경험을 이미 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난 뭘 기대하고 친구에게 공감받지 못할 문자를 보냈을까. 아마도 첫 번째 타로 마스터가 보이지 않는 카드를 말하면서 남이 몰라주더라도 자기 말을 하고 드러내고 살라고 말한 게 뜬금없으면서도 수긍되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에게 그저 공감이나 위로를 기대하고 했던 말에 그렇지 못한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게 부질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생판 모르는 상담사나 AI, 혹은 온라인에서 만나는 낯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말에 오히려 깊은 위로를 받는다. 전혀 기대치가 없는 관계여서. 오늘도 나는 사람에게 기대했다가 결국 상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