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시청 홈페이지를 살피다가 보건소에서 성격검사를 해준다는 공지를 보았다. 3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 온라인 검사지를 제출하면 결과에 대한 상담을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이전에 검사해 본 것들이긴 한데 기억이 나질 않고 검사 당시의 상황과 나이에 따라 검사결과가 달라지는 부분이 있으니 다시 해보고 싶었다. 해석도 해준다고 하니 그냥 검사만 하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MBTI는 지금처럼 유행이 되기 한참 전에 직장에서 받은 기억과 기록지가 있는데, 그 후로 몇 번을 해봤지만 결과가 모두 다르다.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서 검사결과는 매번 바뀌니 신뢰가 낮은 건 다른 사람의 결과를 나라고 해도 맞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다. 성격기질검사 또한 과거에도 모호함이 있었지만 MBTI보단 낫겠지 싶어 제출 후 결과 상담을 받으러 갔다.
상담실에 앉아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놓는 내 행동에 상담자는 수첩을 톡톡 치며 성격이 드러난다는 말을 했다. 처음 하는 말이나 행동이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는데 첫인상이 그렇게 좋게 보이진 않았다. 같은 결과도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좋거나 나쁘게 들리는데 상담실을 나올 때 내 기분은 후자였다. 이것이 질병을 진단하는 검사가 아닌데 어딘가 하자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 민감성, 자기 초월, 자율성 같은 항목과 그래프가 쉽게 이해되거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인트로도 없이 모험을 싫어하고 불안이 높고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며 수치를 강조했다. 근면하지도 않고 끈기나 야망도 없고 완벽주의지만 그렇게 완벽한 것도 아니라는 말을 했다. 부정적인 말을 주로 해서 내가 어딘가 상당히 문제 있는 사람인 듯 여겨졌다. 절제력, 검소함, 체계적, 이타심, 배려심 등 내게 높은 것은 쓱 지나치니 단점만 있는 것 같았다.
상담사의 말처럼 타고난 기질이 유전적인 부분이라면 개인의 잘못이 아니므로 그렇게 표현하는 건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유전자의 영향으로 왜소하게 태어난 사람에게 “어머나, 너무 작아서 어째.”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도전과 자극을 싫어하고 걱정이 많고 끈기가 없는, 되게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진단을 받는 느낌이었다. 검사지 문항을 체크할 당시에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른 부분이 있고 내가 원하는 답이 없는 항목도 많아서 그 애매한 답을 어디에 체크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근면해서, 그 성실함은 남들에게도 보이므로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남의 일까지 대신하고, 남한테 부탁 한번 해본 적 없으면서도 무수한 부탁을 들어주며 살았는데 중간지표에서 조금 치우쳐 있다고 ‘근면한 것도 아니고’라는 표현에 자기 방어를 했지만 ‘이 검사가 살아온 결과지’라는 표현과 ‘위험회피가 높아서 잘 믿지도 않는다’는 말은 상당히 거슬렸다. 연세가 있는 상담사여서 그런지, 검사를 맹신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주는 불편함이 컸다. 완전하지 않은 검사로 누군가의 인생 결과라니, 낙제점수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과 안정을 좋아하는 사람이 섞여 세상이 조화로운데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본다. 왜 야망이 크고 끈기가 있어야만 하는가. 모든 사람이 야망으로 가득하면 세상은 혼란해진다. 자기 야망에 심취한 자들이 권력을 잡아 나라를 망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보고, 죄를 짓고도 잘사는 사람들이 TV에 등장하는 현실을 보고 있지 않은가. 끈기도 무조건 견디는 게 아니라 포기할 때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 모든 상황에 낙천적이기만 한 사람은 그 주변에 걱정이 많고 예민하다고 비난받는 섬세한 사람이 위험을 대비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낙관하는 사람과 비관적인 상황을 준비하는 사람이 함께 있기에 세상은 안전하게 돌아간다. 모든 것에는 장단이 있는데 어느 한쪽이 기준인 듯 말하는 걸 들으며 좋은 상담사는 아니라 생각했다.
검사결과를 문장으로 풀어낸 설명서를 집에서 읽으면서 색을 칠했다. 내가 수긍하는 부분은 노란색으로, 나와 다른 부분은 파란색으로. 절반은 나였지만 절반은 아니었다. 오타가 많고 앞뒤가 서로 배치되는 문장으로 보아 상담사의 해석이 들어간 결과로 보여 더 신뢰가 떨어졌다.
‘성미가 느리고, 단조로움을 잘 견디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화내기를 더디 하고,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여가 활동의 폭이 넓지 않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남에게 원망하고, 대인관계에서 순종적이다.’는 누굴 말하는 건지 싶었다. 성미가 급해서 늘 남들보다 먼저 움직이고 그래서 더 일하고, 지루한 걸 싫어해서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사주에 불이 많아 화도 잘 난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여 오지랖을 부려 챙기고, 감정이 티가 나서 거짓말을 못한다는 말을 듣는다. 관심분야가 많아 남들보다 많은 활동을 하고 나쁜 결과가 생기면 자기 탓을 해서 과거 상담에서 높은 잣대로 자신을 평가한다는 말을 들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한다. 대체 뭐가 나라는 건지 엉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잘못된 해석이 많았다. 1시간 정도 설명해 준다던 사전 안내와 달리 2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모험을 싫어한다는 말과 높은 위험회피 점수만 떠올랐다.
며칠 뒤 폴더를 정리하다 4년 전 상담내용을 적어둔 파일을 찾았다. 그 안에 같은 검사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위험회피가 중간으로 되어 있다. 위험회피가 98이라며 불안도가 너무 높다고 강조한 이번 검사에 더 의문이 들었다. 현재의 상태와 심리가 지표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위험회피는 타고난 기질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비슷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도 끈기가 높아야 좋은 것이라는 상담사의 말에 반론을 제기한 내용이 있었다. 점술에서 말하는 도화살이나 역마살을 과거에는 나쁜 의미로 해석했는데 지금은 좋은 의미로 해석한다. 시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견디는 게 좋다는 것도 경우에 따라 다름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순종적이고 자기주장을 못한다고 말한 이번 상담자의 해설도 정확히 틀렸다.
20대에 친구들은 ‘넌 사막에서도 살아남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호기심도 용기도 있었다. 지금은 인생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낮은 지표가 나올 상황이라고 말했지만 그 상담사는 감정적 공감이나 내 마음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정식 상담의 내담자가 아닌 1회성 상담이라 그랬을까. 상담사들이 신뢰하고 상담을 위해 사전에 확인하는 이 검사지가 내담자를 이해하는 용도로 사용될지는 모르나 완전한 척도는 아니다. 같은 검사문항도 답변자가 어떻게 이해하고 답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MBTI를 비롯해 사람을 파악한다는 모든 검사를 참고 삼아 볼 순 있어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