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가끔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 유튜브에 떠있는 클립형태의 인간다큐를 찾아서 명상하듯 시청한다. 다소 심심할 수도 있는 장르를 찾아보는 건 세상이 현란한 네온사인처럼, 유행어처럼 그게 대세라고 몰아붙이는 흐름이 싫어서다. 세상의 모든 자극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하지 않으면 급류에 휩쓸리듯 원치 않는 곳으로 흘러간다. 요약된 클립의 다큐를 몇 개 보다가 눈물이 나고 서러움이 밀려왔다. 남의 인생이어도 사람이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우리는 갖고 살아간다.
초등학생 나이에 부모님의 임종을 맞고 고아가 되어 거리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예순의 남성은 차들이 주차된 다리기둥 옆을 주거지 삼아 생활하고 있었다. 외부로부터 분리된 벽은 없지만 나름의 살림과 잠자리를 만들어 자신만의 규칙으로 생활했다. 이가 없어 물과 라면만으로 끼니를 대신하는 그는 밤에 파지를 주워 생활비를 마련한다. 제작진이 낮에 주우면 더 많을 텐데 왜 밤에 일하는지 묻자 낮엔 노인들이 주우셔야 하니까 밤에 줍는다고 했다. 일찍 거리에 내몰린 아이를 누구도, 국가도 돌보지 않아 스스로 생존해 낸 사람에게 인생에 대한 좌절이나 사회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약자에 대한 배려가 남아 있다는 부분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릴 때 거리생활을 했으므로 세상사는 법을 알려줄 어른도 없고 국민으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가져본 적 없고 건강보험증은 고사하고 주민등록증도 없어 병원 한 번 가보지 못했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그 긴 시간 동안 자기 파괴적인 삶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온전히 생존하고 있었다. 그가 거리의 현자가 아닌가.
또 다른 사람은 돌아갈 집이 있음에도 노숙하는 분이었다. 사업이든 취업이든 열심히 살다가 외부적인 상황으로 좌절했고 자신의 실패가 죄스러워 차마 가족을 찾아가지 못하고 거리생활을 시작했다. 밭에 폐기된 농작물을 주워 나름의 방법으로 식량을 만들고 거리에서 주운 재료로 만든 자신의 보금자리엔 규칙과 질서가 있었다. 청년의 모습으로 헤어진 동생을 백발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 누나는 죽은 줄로 알고 마음에 묻고 살았다며 왜 찾아오지 않았냐고 통곡을 했다. 가족에게 짐이 되거나 걱정이 되고 싶지 않았던 곧은 청년은 늙어서야 가족을 만났다.
어떤 할아버지는 단정한 양복차림에 전문서적을 읽는 지식자의 면모였다. 그는 서울대를 나와 기업의 대표를 역임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동창회장 등 외부활동을 하고 있기에 모두 그의 외적인 모습과 내면을 동일시했지만 그의 집은 쓰레기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아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집안엔 온갖 살림에 쓰레기가 섞여 바퀴벌레가 공생한다. 누울 공간도 없는 책더미 한쪽에서 양복차림으로 전문서적을 읽으며 여러 언어를 구사한다. 경력이 화려한 사람이 자신의 집에서 왜 이런 생활을 하는지 묻자 과거의 자신이 너무 성공을 위해서만 살았다며 그로 인해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힘들게 했다고 말한다.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스스로 이 집에 가둔 것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배운 인간됨, 사람다움, 도덕과 윤리의식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은 세상을 살고 있다. 국정이 혼란해지고 대통령이 바뀌어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안정될 거라 기대했던 바람은 부서지고 있다. 국가권력을 사적 욕망을 위해 쓴 사람은 소수가 아니고 너무도 넓게 포진해 있다는 사실과 여전히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휘두르는 공직자와 그에 연결된 기업과 학자, 종교인 등 많이 배우고 사회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할 이들은 실체가 드러나도 여전히 부정과 오만을 일삼고 있다. 이런 자들의 부와 명예를 위해 선량한 개인, 시민, 약자들이 피해를 봤다는 점에서 분노가 치민다. 똑같이 학교에서 배웠는데 왜 그들에겐 부끄러움이 없을까. 죄지은 사람은 발 뻗고 못 잔다고 배웠는데 어찌 저들은 그렇게 큰 죄를 짓고도 오랫동안 안위를 유지할 수 있는가.
다큐에서 본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았다. 그런 상황에서 갖기 어려운 인간의 양심, 미안함, 죄의식과 도덕심을 굳건하게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자기반성과 온전함을 품은 사람은 괴로운 현실에서 웅크리며 살고, 약자를 상대로 폭력과 불합리를 자행하는 권력가는 승승장구하며 아무런 죄의식 없이 두 발 뻗고 살고 있다. 도대체 공정과 정의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종교를 내세워 돈벌이하는 세상에서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위기마다 나라를 살리는 건 소시민인데 왜 권력과 부는 상식도 없는 자들이 누리고 있는가. 우울과 불안증을 앓는 국민이 느는 건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나라에 들끓는 도적떼와 명백한 부조리가 사라지지 않는 사회 구조의 문제다. 책임져야 할 자들이 책임보다 면피에 급급하니 그 스트레스도 국민이 대신 받고 있다.
세상에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공정과 정의가 살아 있다면 그들은 보호되지 않아야 한다. 확실하게 단죄되어야 한다. 그리고 약자가 제대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게 국가의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