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 있는 고양이

#28

by 마릴라 Marilla

집 앞 길 건너에 있는 공원에는 아는 고양이가 산다. 잘 안다기보다 안면이 있다는 말이 맞겠다. 흔하게 보는 길냥이인데 공원에서 자주 목격되는 것이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상태와 끼니를 챙기는 캣맘도 있으니, 터를 잡은 모양이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 사람을 보면 도망치기에 바쁘니 낮에 공원에서 고양이를 보기 어려운데 이 아이는 자주 보인다. 다른 고양이는 숨어 다니는데 이 아이만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다가오기에 알게 되었다.

어느 날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는데 거침없이 다가오더니 내 다리에 몸을 비비며 내 주변을 돌기에 개냥이구나 생각했다. 사람에게 다가오는 고양이라서 공원에서 종종 사람들이 놀아주기도 한다. 어느 날엔 다가와서 옆에 엎드려 가만히 있기도 했다.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는 걸 보면 누군가 키우다가 유기한 고양이는 아닐까 싶었다. 다른 길냥이와 같이 있기도 하지만 혼자 공원 광장에 앉아 있을 때가 종종 있다. 혼자 제 길을 가지만 가끔 사람에게 다가와 소리를 내는데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에겐 이게 무슨 표현인지 알 길이 없다.


늦가을, 공원 옆 도서관에서 저녁 수업이 있어 공원을 지나가는데 발소리가 들리자 풀숲에서 “야옹” 소리를 냈다.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서 “응. 그래.” 답하자 숲에서 나와 내 다리에 몸을 비비고 내 주변을 돌더니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곤 나를 올려다보며 계속 “야옹”거렸다. 놀아 달라는 건지, 배고프다는 건지, 뭔가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나는 다리에 몸을 비비는 고양이를 지켜보다가 공원 입구가 어두우니 광장 쪽을 향해 “가자.” 말하자 냉큼 앞장서서 갔다. 내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거침없이 앞장서 가다가 광장 입구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배를 보였다. 쓰다듬어 달라는 말인가 싶은데 배를 만질 자신은 없고 등을 만지려 하자 고개를 들기에 물릴까 봐 만지진 못했다. “근데 나 수업 가야 해.”하며 앞장서자 뒤에서 느린 걸음으로 오다가 멈춰 한동안 나를 쳐다봤다. 동물을 키워본 적 없고 만질 줄도 모르고 언어 해석도 못 하지만 왠지 고양이가 외로워 보였다. 다른 고양이처럼 야생성도 적어 보였고 사람 주변에 자주 나타나고 광장에 같은 자세로 오래 있는 모습이 종종 그래 보였다. 밤에 어딘가 한 곳을 오래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양이가 눈에 밟힌 건 사람을 피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야옹거리는 모습이 나 같아서였다. 가끔 다른 고양이 뒤를 따라가는 모습, 한밤에 눈에 띄게 광장에 앉아 있는 모습, 사람에게 다가가 몸을 비비거나 소리를 내는 모습에서 혼자가 싫은, 외로움이 많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내가 먼저 말을 걸었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가거나 다가가 쓰다듬어도 만사가 귀찮은 듯 무기력하게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강아지 같다가도 시크한 고양이의 본성을 보이기도 했는데 풀숲에서 사람의 인기척에 소리를 내며 다가와 몸을 비비는 행동에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쓰다듬어 주고 같이 놀아주고 자기의 말을 들어달라는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내가 무심히 가버린 걸까. 추워진 계절에 고양이는 어디서 잠을 잘까. 찬바람과 눈발이 날리고 얼음이 어는데 어디로 몸을 숨길까. 너를 데려갈 순 없지만, 네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고개는 끄덕여 주고 싶은데. 너는 네 마음을 말하고 나도 내 마음을 말하며 서로 위로가 되면 좋을 텐데….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고양이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만나면 놀아줘야지 하고 매일 오가는 길에 불러봤지만,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유난히 내게 반갑게 달려온 그날이 마지막이었을까. 그때 좀 다정하게 놀아줬다면 좋았을 텐데, 평소처럼 다음날이면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사라졌다. 최근 다큐를 보다가 동물원 수의사가 아는 동물이 되면 마음이 쓰여 환자동물로만 보려고 노력한다는 말에 공감했다. 길고양이는 흔하게 보지만 안면이 생기니 자꾸 생각난다. 오가며 몇 번 봤다고, 몇 번 나에게 다가왔다고 아는 사이가 된 듯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쓰였다. 춥고 시린 밤, 넌 어디에 있을까. 매일 공원을 지날 때마다 네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는 그날에 미련이 남아서 자꾸 생각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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