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학도 습관이다

#30

by 마릴라 Marilla

이사 3개월 전에 통보하겠다는 말을 3월 이사로 이해한 집주인이 주말에 집을 보러 온다는 사람이 있다며 방문시간 문자를 보내온 날, 집을 찾지도 않은 상황에서 불안이 찾아오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극심한 무기력에 이틀 동안 영상을 틀어놓고 좀비처럼 누워 있었다. 입맛도 없고 움직일 힘도 없었다. 그렇게 누워있으면서 마음이 바들바들 떤다는 걸 인지한 순간 나에게 미안했다.


여전히 내 안에는 겁먹은 어린아이가 있구나. 혼자 힘으로 개척하며 견딘 시간이 길어도 내 안의 아이는 자라지 않았구나. 3년을 주거 불안에 시달렸는데 기억을 유지한 채 원점으로 돌아간 듯 온몸에 불안 세포가 활성화되었다. 얼마나 질긴 불운이 붙었길래 가는 집마다 문제가 생기고 편하게 지낼 수 없는 걸까. 매번 새로운 변수와 문제가 생기는 걸까. 내가 겪어야 할 하자와 분쟁이 얼마나 더 남은 걸까. 이사해도 문제가 생기고 또 짐을 내려놓지 못한 채 살게 된다면 내 노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꼼꼼하게 살피고 들어가도 지상에 살아도 곰팡이쯤은 기본으로 따라다니니 반지하와 뭐가 다를까.


살면서 이사와 퇴거 문제는 생길 수 있고 드러누울 일은 아닌데 뭐 그리 예민하냐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각자 타고난 체력이 다르다. 건강 체질로 감기 한 번 걸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약하게 태어나 잘 넘어지는 사람도 있다. 마음 근육도 그렇다. 닥치면 해결하고 지나면 잊어버리는 성격도 있고, 미리 대비하고 여러 변수를 준비해야 조금 나아지는 사람도 있다. 살면서 한 번, 어쩌다 생기는 일이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번 겪으며 쌓인 두려움의 데이터는 심신을 마비시킨다.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도 여러 변수를 생각하는 습관은 마음이 가련한 자의 생존방식이다. 약하게 태어나 어릴 때부터 겁 많고 잘 놀라는 나는 모호하고 불안한 상황에 스트레스가 커져 생활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완벽주의와 철저한 계획형 인간으로 진화하는지 모른다.


나는 다시 약자가 되어 뒷 상황을 예측하느라 체력을 소모한다. 원치 않는 상황에 아이처럼 떨고 있는 상태가 싫었고 이런 내가 안쓰러운데 나를 지킬 기운도 없어 서러웠다. 잘못한 게 없어도 자주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에 몰리는 현실이 싫고 나를 위로할 힘이 없어 무기력했다.

그러나, 바닥까지 떨어진 내 마음은 올라올 것이다. 자주 마음이 철렁하고 에너지가 많이 드는 낮은 연비의 체질이 싫지만 더디게 나아질 것이다. 그러니 오늘 곤두박질치는 마음을 탓하고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고 자책하지 말자. 오늘은 바닥까지 내려가고 내일 조금 올라오기로 하자. 자학 대신 나를 이해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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