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속상한 줄 알아?

#1

by 마릴라 Marilla

모든 기념일을 기억하고 성실하게 챙기던 시절이 있다. 친구의 생일은 기본이고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되면 부지런히 연락이나 문자를 보내던 시절. 스물 전후까진 새해가 되면 친구들의 어머니께도 안부 전화를 했었다. 그런 관계의 성실함은 문자나 톡이 편해지면서 이모티콘으로 대체되고 어느 순간엔 기업에서 고객에게 보내는 정해진 인사처럼 획일화되면서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요식행위 같은 새해 안부나 생일 문자는 주고받지 않게 된다. 성의껏 안부와 덕담을 보냈는데 “너도!” 같은 수신확인에 그치는 답이나 단체 문자가 확실한 내용을 받으면 허무하다. 그 기분을 반복해서 느끼고 싶지 않아 기념일 챙기기를 그만두었다.


웬일로 아는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톡을 보내려고 보니 목록에 없더라며 잘 지내는지, 새해 인사차 전화했다고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지나간 연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2년 전, 나는 지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택배를 보냈었다. 직접 만든 공예품에 손 편지를 넣어 11월부터 보냈다. 2명에게 선물을 받긴 했으나 편지는 한 통도 받지 못했다. 편지가 받고 싶어 선물을 사은품으로 끼워 보냈는데 문자로 잘 받았다는 수신확인만 할 뿐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니가 보낸 카톡 선물하기엔 짧은 메시지도 없었고, 유일하게 받은 택배에는 무지 에코백 위에 메모로 '솜씨 좋은 사람이니 직접 그려서 쓰면 어떨까 하여...'라는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 있어 안 받느니만 못한 기분이었다고. 받고 싶다는 생각이나 기대만 품는 건 나무 밑에 누워 입 벌리기와 같으니 마음들여 편지가 받고 싶다고 옆구리를 찔렀는데도 어쩜 하나같이 무심한지 상처가 되었다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남에게 마음 쓰느라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정성을 나에게 써야 했는데 헛된 데 마음을 썼다고, 편지를 나에게 쓰기로 결심하고 매달 쓰고 있다고. 그래서 작년에 열두 통의 편지와 생일 카드와 크리스마스카드도 나에게 썼다고 말했다. 언니는 잘했다는 말 뒤에 “뭘 그렇게까지 서운함을 마음에 담아두고 그래요?”라는 말을 보탰다. 순간 내가 옹졸한 사람인가 싶은 자책이 들었으나 왜 그랬을까 상처의 이유를 떠올렸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하지만 당시엔 상처가 됐죠. 편지를 보내고 기다렸는데 한 통도 받지 못했으니까요. 편지가 받고 싶어서 신호를 보냈는데도 카드 하나도 오지 않았어요. 나 하나 돌보기 힘든 그때 제가 왜 그랬을까요? 터널을 지나는 중이라 힘들고 외로워서 위로받고 싶었어요. 어느 날 사라지는 말이나 문자가 아니라 편지로 위안받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내 상황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아무도 알아채지 않았어요. 그게 상처인 거예요. 그래서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고 그 마음을 저한테 쓰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전화를 끊고 괜한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인사치레 같은 안부만 묻고 말 걸. 언니의 다정하고 상냥한 말씨에는 어떤 악의나 질책이 없음을 안다. 내 상황을 아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남의 일은 금방 잊고 무겁게 남지 않기에 누구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이 속상한 순간은 의외로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마트 아이스크림보다 비싸서 어쩌다 사 먹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통을 파먹다가 속에 큰 구멍이 있으면 조금 마음 상하는 것처럼 내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한 사람의 “잊어버려. 좋게 생각해. 담아두면 너만 힘들어.” 같은, 시기에 맞지 않는 말이 숨겨진 구멍처럼 속상함으로 남는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