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찰나 같아 찬란했던 계절이 있었다.
봄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짧았고, 추억이라고 하기엔 아직도 생생한 시간.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보내지 못한 편지를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 든다.
이 편지는 너무 늦게 쓰인다.
너무 일찍 하늘로 날아가버린 나의 벗, 나의 봄이었던 아연에게.
질풍노도의 스무 살. 만족할 수 없던 모든 것들이 나를 뾰족하게 만들었다. 만족할 수 없던 대학, 맘처럼 되지 않던 연애, 미래에 대한 불안, 군대에 대한 걱정. 스무 살이라는 단어는 찬란했지만, 찬란하지 않은 현실이 슬펐다. 슬펐지만 티 내지 않으려 열심히 뾰족해졌다. 아름다운 게 아름다운 지 몰랐던 미생의 시절.
지금도 뒷북은 전매특허이지만, 스무 살 때도 그러했다. 차라리 사춘기를 일찍 겪었다면, 조금은 더 그럴싸했을까. 돌이켜보면 가장 예뻐야 할 시기에, 가장 형편없는 마음을 갖고 살았다.
그런 마음마저 받아줬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과 동기였던 아연.
작은 키, 순둥 한 이미지의 아연은 불만투성이의 나에게 먼저 마음을 열었다. 세상을 삐뚫게만 바라보던 나에게 먼저 웃음을 지었다.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었다. 아연은 내가 '재밌다'고 했다.
재밌다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어쩌면 결이 비슷하다는 뜻이지 싶다. 작고 순해 보이는 아연이 내게 비슷한 결을 느낀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마음에 배신하지 않기 위해 아연을 소중히 생각했다. 그렇게 아연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아연은 내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항상 따뜻하게 나를 반겨주었고, 나의 어떠한 불만이나 자조 섞인 말에도 그럴 수 있다, 괜찮다 말해주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편을 들어줄 것 같다는 안정감은 친구에게서는 쉽게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었다. 나도 아연에게 비슷한 사람이고 싶었다.
아연도 나처럼 불안한 사람이었다. 억압되었던 학창 시절과 별것 아닌 현실 앞에서 종종 괴로워했다. 아연은 일탈을 선택했다. 악을 저지를 만큼 악한 기질은 없었기에, 착한 심성의 귀여운 반항을 했다. 머리를 탈색하고, 술을 즐겨 마셨다. 클럽에 가고, 가끔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 스무 살에 할 수 있는 적당한 방황이었지만, 소연은 그런 언니를 늘 걱정했다.
"오빠. 언니 지금 어디 있어요?"
"아연이 연락 안돼? 내가 연락해 볼게."
가녀린 아연을 걱정하는 건 더 가녀린 동생이었기에, 가끔은 쓴소리를 해야만 했다.
"아연아. 술 마셔도 집에 연락은 해. 소연이 걱정하잖아. 너무 늦게 들어가지 말고. 세상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겁도 없이."
잔소리에도 헤프게 웃는 아연이었다.
아연은 자유롭고 싶었나 보다.
나는 밴쿠버에 1년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아연은 자기도 캐나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알던 지인들을 연결시켜 주었고, 아연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워낙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라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아연은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였다. 늘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아연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였다.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가끔은 왜 그렇게 술을 마시냐, 하루하루 행복한 것도 좋지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평범한 삶을 좀 생각해 보는 건 어떠냐 하는 진부한 질문들을 하고 싶었지만, 끝내 속으로 삼켰다. 아연이 있는 그대로 날 바라봐주었기에, 나 또한 그러려고 했다.
취직을 하게 된 후, 얼굴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뜸해졌다. 그럼에도 아연은 내 마음속 깊이 애정하는 친구였다. 아꼈음에도, 늘 먼저 연락하는 것은 아연이었다. 아연은 그렇게 내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코로나가 심했던 봄이었다. 아연은 코로나의 유행이 너무 심해, 약속을 미루자 했다. 속으로는 아연이 유별나다 생각했지만, 마침 귀찮기도 했어서 알겠다고 했다.
그게 아연과의 마지막이었다.
2주 뒤,
소연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어떡해요. 우리 언니......."
소연은 전화를 받자마자 하염없이 대성통곡했다.
그렇게 아연은 아무 말도 없이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급해서 먼저 날아가버린 건지.
추운 겨울 속에 홀로 서 있는 날,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아연.
늘 다정한 말로 따뜻하게 나를 감싸주던 아연.
네가 있어서 시린 겨울도 조금은 따뜻했어.
그렇게 자유롭고 싶다더니,
거기는 좀 편안하니.
나중에 만나면 그동안 있었던 얘기, 재밌게 들려줄게.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거기선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소연이 걱정한다.
고마웠어. 내 친구야.
넌 찰나 같아 찬란했던
내 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