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지독한 겨울의 끝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글이었다.
처음에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주 쉬는 한숨에 대하여, 혐오에 대하여, 지역감정에 대하여, 보이지 않는 계급에 대하여, 공황장애와 우울에 대하여, 돈에 대하여.
방구석 염세주의자에 한탄에 불과했던 글이 공감을 받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세상은 어떠한 사실이나 정보보다, 결국 시선에 감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불편한 시선을 누군가는 공감해 주고, 응원해 주는구나.
내가 걸어온 길과, 썩어빠진 생각이 조금은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닫고, 조금씩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그러다 문득, 조금은 아름다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지 않은 나를 보며 든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생각을 하며 적어내면, 조금은 아름다워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게 된 소설 <비와 당신>.
청춘과 첫사랑이라는 다소 흔한 주제였지만, 본디 아름다운 것은 흔한 것이니.
지극히 사적이고 미숙한 끄적임이 되지는 않을까 염려했지만, 의외로 재밌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 편이 기대된다는 사람들, 몽글몽글하고 추억이 떠오른다는 사람들의 후기를 들으며 나도 예쁜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글이, 책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말을 맺기 전, 우연히 <마음서재>라는 출판사의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원고모집'
출간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다만, 내 글에 대한 출판사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었다.
"글 재밌네요."
<마음서재> 출판사의 대표님은 브런치에서 활동 중인 '볕뉘 작가님'이셨다.
'볕뉘' '마음서재' '북페어' '독립서점'
작가님의 키워드만으로도 알 수 없는 따뜻함과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 따뜻함과 안정감은 변수가 없었다. 늘 일정하게 같은 상수처럼.
"작가님, 공동집필이 대전 인근 브런치 작가로 되어 있어서 문의드립니다. 제가 꼭 참여하고 싶어서요. 저는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데, 혹시 가능할까요?"
"그럼요. 작가님. 마림 작가님 글 너무 좋아요."
작가님은 내 글이 날 것 같으면서도 따뜻하다고 하셨다. 그 특유의 문체가 좋다고. 내 삶 전체를 온전히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작가님. <비와 당신> 계약하시죠. 계약서 전달 드릴 테니, 천천히 검토해 보세요."
기적 같은 일은, 내게도 찾아왔다.
트럭 냉동고에 갇혀있다가 문이 열리며 스며든 빛처럼.
커튼을 열자 눈부시게 쏟아지던 아침 햇살처럼.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아름답게 반짝이는 볕뉘처럼.
공동 집필 회의와 출간 계약을 위해 대전을 방문했다. 오던 길에 버스 사고가 나긴 했지만, 작가님은 나의 대전 방문이 즐겁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계셨다.
자주 가는 빵집, 구경하기 좋은 미술관, 맛집을 하나하나 알려주시며 마음을 써주셨다.
"작가님. 제 무리한 요구와 부탁에도 늘 따뜻하게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 출판사 작가님인데, 당연하죠."
작가님은 나를 언제나 '우리 마림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신다. 그럴 때마다, 내가 뭐라도 된 듯한 우쭐한 기분이 든다. 마치 월드 스타가 되어, 레드카펫을 걷고 경호를 받는 사람처럼.
억울한 일도 많았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원망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지독하게 안 좋은 타이밍들이 겹쳐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순간도 있었다.
기어코, 햇살은 비췄다.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고, 보호해 주는 수호신 같은 것들.
바람이 날 흔들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마침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해였다.
이 글을 빌려,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싶다.
작가님.
긴 겨울 끝, 봄처럼 나타나주셔서.
이유 없는 믿음을 주시고, 호의를 베풀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마음을 건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꽁꽁 얼었던 발이 녹아 몇 발짝 조금씩은 걸어가고 있습니다.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살아가려 합니다.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하려 합니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을 키우려 합니다.
받은 것을 베풀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봄처럼 아름다우신 볕뉘 작가님께.
- 마림 드림
다만,
이 봄이 너무 짧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