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외동을 바라보는 시선

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by 마림


"혈액형이 뭐야? 띠는 뭐야? MBTI는? 형제 관계는 어떻게 돼?"



우리는 유독 사람을 분류하는 일을 좋아한다.

너무 쉽게. 자주.



통계학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혈액형'과 'MBTI', '사주'에 은근한 재미를 느낀다. 종교나 미신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늘 확률이라는 그럴듯한 근거를 내세운다.


물론 통계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럼에도 처음 만난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와 비슷한 결로, 나 역시 오래도록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하나 있다.
바로 ‘외동’에 대한 시선이다.


외동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일 것이라는 생각, 욕심이 많고 귀하게 자라 배려심이 부족할 것이라는 이미지.
나는 그렇게 외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살다 보니, 통계에는 늘 변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독 내 주변에는 외동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외동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에 유난히 예민했고, 그런 반감을 알면서도 짓궂게 놀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어쩌면 그 마음 한편에는 부러움이 섞여 있었는지도 모른다.






형이 있는 막내로 자라며, 형은 늘 나보다 앞서 있었다. 내가 한 발 내딛으면 그는 두 발 앞서 나갔다. 그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고, 어린 시절의 나는 늘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는 외동의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갖는 일이 더 쉬워 보였다. 그래서 외동을 ‘온실 속 화초’, ‘개인주의’라는 틀 안에 가두고,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분류해 두었다.


하지만 사회는 달라지고 있다.

다자녀가 흔했던 부모님 세대를 지나, 두 명의 자녀가 보편적이던 나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한 명 혹은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이 자연스러워졌다. ‘외동’이라는 말 자체가 특별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형제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배려심이 깊은 것도 아니다. 어릴 때는 외동 친구들의 개인주의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안에 담긴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지킬 줄 안다는 것. 그 능력은 때로는 자유로움이 되고, 사회성과 결합될 때 매력으로 확장된다. 특히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개인화된 시대에,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다루는 사람은 강해진다.


사회성이 더해진 외동은 더 이상 ‘이기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






혐오와 편나누기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사람을 갈라치는 일에 점점 지쳐간다.
그 속에서 외동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옅어졌다는 사실은 작은 기쁨이다.


맏이는 책임감을 배우고,
둘째는 <응답하라 1988>의 덕선처럼 위와 아래를 잇는 균형을 익히며,
막내는 사랑 속에서 자라 센스와 애교를 얻는다.


외동은 자신만의 시간을 견디는 법을 알고,

관계에 대한 결핍을 사랑으로 전환하는 법을 배운다.


인간을 어떤 틀로 정의 내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오래도록 품어왔던 선입견을
조금은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