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ter가 세상을 사랑하는 법 Vol.2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나 하나도 안 취했어.”
“무슨 소리야. 이제 시작인데.”
술자리만 가면 지겹도록 듣던 말들이다.
뭐가 그렇게 자랑인지, 사람들은 주량을 뽐냈다.
물론 숙취가 없는 건 축복이 맞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왜 그렇게 다들 부심이 생길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술부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하지 말라’는 건 웬만하면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술이나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술·담배를 하는 친구들을 속으로 저급하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내 우월감을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을 것이다.
경험이 없으니 주량도 알지 못했다. 스무 살, 대학에 입학해 모르는 사람들과 술을 마셔야 했다. 지기 싫었고, 약한 척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는 대로 마셨고, 결국 소주 한 병을 넘기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토했다. 스무 살의 기이한 패기와 자존심은 ‘취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술이 센 사람들은 늘 있었고, 일찍 취하는 건 나약하고 도태되는 일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술을 마시다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세수를 하고 나와 다시 마셨다. 그렇게 미련한 방식으로 술을 훈련했다.
친구들과 마실 땐 그 자존심이 더 강해졌다. 20대 남자들 사이에서 술은 가장 미련한 자랑거리였다.
“술도 못 마시는 게. 오늘 함 뜰래?”
“나는 취해본 적이 없어. 제발 좀 취하고 싶다.”
아무 의미 없는 대결은 늘 그렇게 시작됐다. 토하면서 마시고, 취하지 않은 척하고, 다음 날 괴로워하며 비틀거리던 날들이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술로 채우려 했던 것 같다. 세상의 재미를 모르고, 친구와 술에만 기대 살아가던 시절. 답답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괴로운 술을 도피처로 삼았다.
술자리가 늘 행복한 건 아니었다. 과음이 당연해지고, 술부심이 대결이 되는 자리엔 늘 사고가 따랐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상처를 주고, 주사를 부렸다. 그중에는 물론 나의 모습도 있었다. 주사가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았지만, 선을 넘은 말을 한 적도 있었고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기절한 적도 있다. 젊은 날의 패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하등 쓸모없는 자존심이었다.
서른을 넘기며 술자리의 빈도 자체가 줄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가정을 꾸렸거나 일이 바빠졌다. 각자의 스케줄과 삶이 생기며 자연스레 자주 보지 못하게 됐다. 가끔 만난다 해도 예전처럼 끝장을 볼 때까지 마시진 않는다. 이제는 오늘의 도파민보다 내일의 괴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나이가 됐다.
어쩌면 술의 템포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멀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주량을 배려하고, 주사가 없는 사람들만 남은 걸지도 모른다.
술은 때로는 약이고, 때로는 독이라고 한다. 술을 잘 마신다는 건 주량이 많다는 뜻이 아니라 술자리에서의 태도와 매너가 좋다는 뜻 아닐까.
세상엔 자랑할 게 없어서 술을 자랑하는 사람이 있고,
술 말고도 잃을 게 많아서 조심히 마시는 사람이 있다.
가끔은 술부심이 귀엽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선을 지킬 줄 아는 게
가장 큰 미덕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