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내린 뒤

by 마림



니가 내린 뒤



마림(眞林)



밤새 비가 내렸다


지붕을 두드리던 소리와

거리의 불빛에 번지던 물결이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아침이 오자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


젖은 나뭇잎들이
빛을 하나씩 털어내고

웅덩이에 비친 세상도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간다


나는 그 길 위에 서서
한 번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비가 그친 뒤,

어제까지의 나를
조금은 덜어낸

가볍고
낯선 숨


시작은
언제나

무언가 끝난 자리에서
가만히


그리고 고요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