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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月蝕)

사랑과 그리움의 궤도

by 마림

월식(月蝕)


마림(眞林)


구(球)를 사랑했다


낡디낡은 월(月)의 뒷면을 감추고

어여쁜 모습만 보이려 애썼다


구(球)가 날 외면하지 않도록

자전(自轉)의 속도를 바꾸고

공전(公轉)의 걸음을 맞추며

끝없이 그 곁을 맴돌았다


하지만 구(球)는

언제나 일(日)을 바라보았다

그의 온기 속에서만 웃음을 지었고,

그의 그림자 속에서만 나를 찾았다


일(日)은 고요하게 빛나고

세상은 그의 빛에 흔들렸다

변함없는 사랑으로 구(球)의 곁을 지켜도

일(日)의 빛 앞에서 결국 그림자가 된다


그리움이 일직선이 되는 밤

나는 사라졌다

사라진 건 나인데

세상은 구(球)가 나를 가린다 했다


사라져도 괜찮다

그 순간만큼은

구(球)가 나를 들여다본다

아무 말 없이,

내 어둠 속을 들여다본다


그 짧은 눈맞춤을 위해

다시 구(球)곁을 맴돈다

월광(月光)과 일광(日光) 사이

끝없이 그 궤도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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