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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10. 2021

재택근무를 하다 일탈을 했다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요, 콜은 집에서 하겠습니다. 병원 다녀와서 재택근무하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도저히 일어날 기운이 나지 않았다. 평소였으면 시계를 보며 언제 일어날까를 계산하고 있었을 텐데  이번에는 온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몸이 바닥으로 푹 꺼저버렸다. 


오전에는 해외업체와 화상회의가 잡혀 있었다. 


회의시간 10분 전, 노트북을 켰다. 


회사에 재택근무를 하겠다는 걸 알리고 한 시간 동안 회의에 열심히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후,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집 밖으로 나왔다. 


회사 대신 병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줄이야. 편도선이 많이 부은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목 상태는 양호했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자 안심이 되었다. 


병원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점심시간이라서 밥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으로 바로 갈까 하다 근처에 있는 서점에 가고 싶어 졌다. 


회사 밖에서 혼자 보내는 점심시간을 어떻게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작은 일탈이 하고 싶었다. 






서점에 도착하자 눈앞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살짝 어두운 조명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주었다. 

감미롭게 들리는 음악을 느끼며 홀로 서점 매대를 돌아보았다. 


지금 이 시간에 책에 둘러싸여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매출이 줄자 회사에서의 압박이 위에서 밑으로 그대로 전달되었다. 


나 역시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출근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답답했다. 줄줄이 퇴사한 직원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오늘은 또 어떤 말을 들을까? 예전 직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멘탈이 강해졌다고 생각했음에도 여전히 두렵고 불안했다. 



밤에 잠을 자는데 온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시름시름 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은 촉박했지만 어떻게 해서든 책을 통해 위로받고 싶었다. 구원의 투수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얼마 전 알게 된 "은둔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읽고 싶은 책이어서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책이 비닐로 포장되어 있어서 읽어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책을 바로 사버렸다. 정가를 지불하고 책을 서점에 사는 건 오래만이었다. 




"... 요즘에도 가끔 무언가에 적응하기 힘들 때면 서점에 간다. 그러면 서점은 여지없이 나의 안락한 장막이 되어준다. 그 장막 속에서 천천히 서가를 돌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고 인적 드문 귀퉁이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어렸을 때처럼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은 충만함을 느끼게 된다" P. 27 

[은둔의 즐거움/신기율 지음] 



카페에서 바닐라라테를 홀짝거리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지금 내 마음 상태를 누군가가 정확히 짚어주다니. 


깊은 한숨이 밖으로 나왔다. 이제야, 이제야 살 것 같았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았다.  저 멀리 앉아있는 두 명이 눈에 띄었다. 


홀로 조각 케이크를 유독 열심히 먹고 계시는 여자분과 모자를 깊게 푹 눌러쓴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한분이었다. 


왠지 동지애가 느껴졌다. 


내가 점심시간에 서점에서 위로받듯 저분들은 조각 케이크를 먹으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고 있는 걸까? 





카페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마음에 와닿은 책 속 구절 덕분에 오후를 견딜 수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일상 속 일탈이 주는 힘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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