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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15. 2021

카페에 갈 때 무조건 노트와 펜을 챙겨갑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오전 6시 반이었다. 


근무 시작인 10시까지는 아직도 몇 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문득 스타벅스가 생각났다. 얼른 준비하고 나가면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수만 하고 옷을 얼른 갈아입었다. 통밀 식빵에 땅콩버터를 대충 발라 입에 쑤셔 넣었다. 에코백에 노트 한 권과 볼펜을 넣었다. 

 

시계를 보니 7시 10분 전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마스크를 챙긴 후 집 밖을 나갔다. 샛길을 따라 쭉 걸으니 풀냄새, 새소리에 기분이 절로 상쾌해졌다. 발걸음을 서둘렀다. 누구보다 일찍 카페에 도착하고 싶었다.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는 리모델링을 한다는 이유로 며칠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 방문했을 때 문 앞에 공사를 한다는 안내문을 읽은 적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쯤은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코로나가 4단계로 격상하면서 다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다. 일주일의 중간 수요일에 당첨이 되었다. 


재택근무를 다시 할 수 있어 기뻤다. 


화요일 퇴근 길이 금요일 같이 느껴졌다. 


7시에 퇴근해서 서점으로 달려가 문을 닫을 때까지 있었다. 책은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지만

그곳에 가 있는 것 자체가 휴식이었다. 허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채워졌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생각하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근무 시작 전까지 뭐라도 하며 오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리모델링을 끝낸 카페가 생각나서 가보았다. 


새로 단장한 그곳은 이전보다 훨씬 깔끔해져 있었다. 


아이스 카페라테를 시키고 큰 통유리가 보이는 곳에 앉았다. 


집에서 가져온 노트와 볼펜을 꺼냈다. 


어제 서점에 갔던 일과 오늘 카페에 오게 된 것을 끄적거렸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덕분에 집중이 훨씬 잘 되었다.  






회사만 생각하면 왜 두렵고 불안한지, 내가 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어떤 신념들에 대해서도 적어보았다. 


해고, 무능력, 무의미, 무시, 조바심, 능력 밖의 일, 트라우마 같은 단어들이 줄줄 나왔다. 


계속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떤 생각들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객관적으로 보였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에 파묻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지 직접 써보니 알 수 있었다. 






노트 몇 장을 빼곡히 채우고 또 채웠다. 


키보드 대신 손으로 글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불안하고 두렵고 또 답답한 심경을 토해내듯 쓰고 또 썼다. 


그랬더니 좀 살 것 같았다. 






글을 쓴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현실은 현실이었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단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들 때문에 괴로워하는지가 보였다. 


그리고 어떤 태도로 오늘을, 내일을 맞이하는 게 더 이로울지를 고민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과연 이대로 괴로워하며 갈 것인지 아니면 내 마음에 어떤 변화를 주어야 할지, 이 모든 게 나한테 달렸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근무시간에 맞춰 카페를 나왔다.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원하던 대로 오전을 의미 있게 보낸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오늘도, 내일도 또 어떤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가 펼쳐질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카페에서 노트에 끄적거리는 나를 상상해보기로 했다. 


순간 이동하여 마음속 응어리를 털어내고 또 털어내는 모습을 그려보기로 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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