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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20. 2021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날

주말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주말이 되면 한동안 손을 놓고 있던 유튜브도 영상도 다시 찍고 구글 애드센스로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책도 다시 읽을 예정이었다. 번역 알바를 알아볼까? 이런저런 계획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매일 아침 가슴 졸이며 출근하는 이 삶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서든 주말을 꽉 채워서 보내야만 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치고 힘들었던 일주일이 지나고 기다렸던 주말이 드디어 왔다.


토요일 오전, 눈을 뜨자마자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기로 방을 깨끗이 정리했다.

덜컹대는 세탁기 소리를 들으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앞으로 찍을 유튜브 콘텐츠를 기록해보고 책도 읽을 예정이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는

한국어 자격증 코스를 한번 알아볼까? 주말에 들을 수 있는 온라인 코스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뭐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앉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은데 시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유튜브에서 스타벅스 매장 음악을 틀었다. 평소에 이 음악만 들으면 항상 집중도 잘 되고 몰입이 잘 되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음악만 들리고 머리와 손가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빨리 글을 쓰고 유튜브도 찍어야 하는데, 이것저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한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책상에 한참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서 이불 위에 누웠다.

누웠지만 지금 이렇게 편하게 누워 있을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이대로 주말이 지나가버리면 너무 허무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누워만 있고 싶었다.

사용하고 싶지 않은 단어지만 무기력이 나를 덮친 것 같았다.






온전히 혼자 보낼 수 있는 이틀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다니.


주말이 짧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길게 느껴졌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면 나에게 주어진 그 많은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그건 더 싫었다.








문득 부모님이 계시는 집이 그리웠다. 전에 살던 곳의 풍경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다.


집에 가고 싶었다.


나의 원대했던 주말 계획은 어디로 사라지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역을 타러 나갔다.  


갑자기 신이 났다. 뜨거운 햇살에 등이 타는 듯했고 얼굴에서는 땅이 주르륵 흘렀지만 여행을 가는 기분이었다.





주말 내내 부모님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티브이를 보고 낮잠을 잤다. 냉장고에서 복숭아, 수박을 마음껏 꺼내 먹고 치킨도 시켜 먹었다.


지쳤던 마음이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내가 원했던 건 "휴식"이었다.  


5일 동안 일을 하고 주말까지 바쁘게 달리고 싶지는 않았던 거였다.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마음 한구석에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다시 생겼다.


그리고 이제야 이렇게 글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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