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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06. 2021

가끔 비공개로도 글을 써야 하는 이유

한동안 글을 쓰기가 힘들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글을 썼고 글쓰기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도 잘 써지지 않았다. 몇 줄 쓰다 쉽게 포기해버렸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글을 써왔던 걸까? 써놓은 지난 글 속에서 만난 내 모습은 낯설었다.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고 싶어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문득 왜 나는 힘들고 지치는 이야기만 계속 쓰는 건지, 하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좀 더 기쁘고 희망적인 일들을 적을 수는 없는 걸까.


내가 써놓은 글이 불평불만으로 가득 차 보일까 봐, 나라는 사람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비칠까 봐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나 혼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걷다가, 지하철을 기다리거나 타고 내릴 때 여러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각났고 그때의 감정과 기분이 어땠는지 꼭 적어놔야지 다짐을 했다.


하지만 다짐만 했을 뿐 글로 옮기지는 못했다.




 

나 자신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계속 내가 나를 외면하다 보니 나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이 여름이 그냥 이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결국 네이버 블로그 비공개 일기장을 열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지금"을 기록하기로 했다.


가끔 비공개 일기를 쓰곤 하는데 

싫은 사람 욕도 실컷 하고 마음속에 묻어두기만 했던 이야기를 쏟아부어내면

가슴이 너무 후련했다.


누구에게 보여줄 이쁜 사진이 아닌

지금 실제 내 모습과 내 주위를 찍어서 글과 함께 저장을 해두기도 했다.



아, 이때 난 이런 생각으로 여기에 있었구나, 그래 그랬었지.

정말 날것 그대로의 내 모습을 저장해두었다. 시간이 지나 지난 비공개 일기장을 읽으면

별일 아니었는데 나 혼자 심각했고 또 그때는 힘든 일이 결국 시간이 지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다시 키보드를 탕탕 두드리며 마음을 토해냈다.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 이제야 나와 다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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