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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Aug 09. 2021

회사 사무실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찌는듯하게 더웠던 아침 출근길이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바로 앞에

하늘거리는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자분의 뒷모습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저런 원피스는 나도 있는데.


옷장 속에 걸려있는 여름 원피스들이 생각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원피스를 입은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여름"이었다.


생각해보니 올여름에는 옷장 속 원피스를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았다


살이 찐 탓도 있지만

나를 꾸미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원피스를 입는 게, 나를 꾸미는 게, 사치처럼 느껴졌다.

원피스를 입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퇴사를 하고 싶었다.


매일 계속되는 이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대책 없이 바로 그만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막상 그만두면 당장 돈을 못 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돌아보면 해외영업직에 있을 때 근속연수가 제일 짧았다.


다녔던 회사들마다 분위기가  험악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이후로 여러 회사를 들어가고 나오는, 퇴사와 이직이 반복되었다.


일을 하기 싫은 건 아니었지만 압박적인 분위기가 나를 힘들게 했다.



이번에도 역시 나 자신을 탓했다

내가 능력이 없어서 힘든 거라고...







"회사에서 그분과 더 이상 함께 일을 할 수없게 됨을 통보했습니다"


월요일 아침, 함께 일하는 상사가 해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회사 상황이 안 좋아지자 상사는 수시로 나를 회의실로 불러댔다.


본인이 받는 압박을 그대로 나에게 전달했고

업무의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간섭하고 시비를 걸었다.


그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왜 줄줄이 퇴사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다들 그 상사와 일하기가 힘들어서 그만뒀다고 했다.






얼마 전, 상사가 사무실에서 소리를 지르길래 그만둘 각오로 그에게 단호하게 말을 했다.


"저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평소 사무실에서 조용하고 고분고분하게 있던 내가

이렇게 말하니 놀라는 눈치였다. 


속으로는 엄청 떨렸지만 겉으로 표 나지 않길 바랬다. 


그리고 회사 내 인사부에 면담을 요청했다. 상사에게 대든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참으면서 더 이상 지내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짤리는 한이 있어도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아니, 그래야 살 것 같았다.






그와 일했던 직원들이 그를 다 떠났다.


매출실적도 없고 직원들과 문제만 계속 발생하자 회사에서는 그를 내보내기로 결정을 했다.


나보다 연봉이 높은 상사가 비용절감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상사는 사무실에서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내 업무에 간섭하지 않고 나 역시 외부에 이메일을 보낼 때 그를 제외하기 시작했다.  


그  전보다는 업무 할 때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그는 자기 책상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며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권력을 휘두르며 직원들을 함부로 대하다가 그 권력이 없어지자 한순간에 변한 그의 모습을 보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어렸을 때 읽었던 이문열 작가의 소설이 생각났다.


주인공 엄석대와 상사의 행동이 교차되어 보였다.







내 목소리를 낸 후 회사에서 반전의 상황이 펼쳐지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회사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길 너무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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