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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04. 2021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혹시 수박 반 덩이는 안 파나요?"


수박이 너무 먹고 싶어서 퇴근길에 마트에 들렸다. 가끔 수박을 몇 덩이로 나눠 파는 게 생각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가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잘라진 수박은 보이지 않았다.


마트 직원에게 물어보니 한 통으로만 판다고 했다.


매장 한가운데에 수박이 쌓여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수박을 바로 앞에 두고 그냥 가야 한다니, 쉽게 발걸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렇게 습하고 더운 여름 날씨에는 수박만큼 갈증해소에 좋은 음식이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  냉장고에 엄마가 락앤락에 네모 모양으로 썰어놓은 수박이 생각났다.


여름이면 우리 집 냉장고에는 항상 수박이 있었다.


엄마랑 마트에 가면 잘 알지도 모르면서 손가락을 튕기며 수박을 이리저리 두드렸다. 초록빛의 원통에 새겨진 검은 줄을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꽁지가 싱싱해야 좋다고 해서 수박을 살살 들어 밑부분 꼭 확인하기도 했다.








수박을 고를 때, 누구보다 신중했다.


"엄마, 이걸로 할까? 아님 저거?"


내가 몇 가지를 골라 물어보면 주로 결정은 엄마가 했다.


열심히 고른 수박을 집으로 데려와 냉장고에 넣을 때,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시원해진 수박을  냉장고에서 꺼내 반을 뚝 잘라 칼로 한 부분을 잘라먹을 때, 그 달콤함이 입안에 퍼질 때, 수박 고르기에 성공했다며 서로 좋아했던 기억이 났다.


수박을 쟁반 한가득 담아 거실로 향할 때 곧 수박을 먹을 생각에 신나 했던 그때의 설렘이 생각났다.


 





그렇게 좋아했던 수박을 못 먹게 되다니, 눈앞에 있어도 가져갈 수가 없으니 허탈했다. 수박 한 통을 들고 갈 힘이 도저히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마트를 나서는데 한쪽에 진열된 복숭아 팩이 보였다.


안 되겠다 싶어서 복숭아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팩에서 복숭아를 꺼냈다.


흐르는 물에 복숭아를 깨끗이 씻어 한입 베어 물었다. 물컹물컹한 복숭아와 달콤한 즙이 입안 가득 퍼졌다.


수박대신 할 수 없이 고른 복숭아였지만 하루의 고단함과 피곤이 복숭아 덕분에 다 풀렸다.








내가 원했던 것을 가지지 못했을 때, 부족함과 아쉬움 대신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수박 대신 복숭아를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꼭 A가 아니어도 B가 줄 수 있는 또 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을.



내 삶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미련을 가지기보다,

다른 선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와 재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그래 보기를 바라본다.


얼마 전에 산 자두도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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