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Jun 26. 2021

어느 날라리 신자의 고백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고해성사는 코로나 때문에 작은 방에서 진행이 되었다.


원래 유아실이었던 방을 잠시 고해실로 쓰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칸막이 너머로  신부님 모습이 살짝 보였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의자에 앉았다.









지난 주말, 별다른 약속도 없었고 혼자 있기 싫어서 부모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토요일 하루 전체를 엄마와 동생과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쇼핑도 했다. 동생은 열심히 옷을 고르는데, 내 눈에는 세일하는 옷들이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매장을 몇 바퀴 돌다가 결국 혼자 밖으로 나왔다.


"난 광장에 있을게"



엄마와 동생에게 카톡을 남겼다.

이쁜 옷을 입고 싶은 마음도, 사고 싶은 마음도 안 들었다. 서 있는 게 힘들 정도로 다리가 아팠다.



광장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쇼핑백을 손에 몇 개나 들고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은 세일 상품을 득탬 해서 신이 난 표정으로 가득해있었다. 내 모습도 저래야 되는 게 아닐까? 무력하게 앉아있는 내 모습과 너무 비교되었다.







회사만 생각하면 마음이 불안했다.


매일 느끼는 압박감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책을 통해 위로받으려 해도 글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성당이 생각났다. 힘들 때만 성당을 찾는 내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미사만 참석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오랜만에 성당을 가는 거니 고백성사를 보라고 권하셨다.









"고해성사 본지 몇 년 되었고 성당을 찾은지도 정말 오랜만입니다..."



마스크를 끼고 말하는데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지금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제가 능력 밖의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마음이 심란해서 그래서 성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말을 이어가야 하는데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고해실에서 이래서 되나 싶었다.


마침 바로 앞에 클리넥스 상자가 보였다. 티슈를 한 장 뽑아서 얼른 눈물을 닦았다. 괜히 주책스러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빨리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아... 네 그러셨군요..." 건너편에 앉아계시는 신부님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들려왔다.









어떻게 해서든 이 불안한 감정을 스스로 극복하고 싶었지만 그 어느 것도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종교를 찾게 되었다. 날라리 신자는 어려울 때만 하느님을 찾는다. 지은 죄를 고백해야 하는데 요즘 겪고 있는 힘든 상황만 털어놓았다.



신부님은 성서 말씀을 빗대어 무언가를 설명하셨다.


성경공부는 아무리 해도 돌아서면 까먹기 일수여서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시는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흔들리는 배안에 있을 때 누구는 믿음을 바로 저버리고 누구는 믿음을 끝까지 가지고 갑니다. 당장 내 눈앞에 풍랑이 보일지라도 결국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실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끝에 하신 이 말씀만 제일 기억에 남았다.







눈물을 닦고 밖으로 나왔다. 미사를 드리는 내내 고해실에서 괜히 운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밖으로 나왔는데 왠지 후련했다. 고민하고 있던 것들을 털어놓아서인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점심을 차려먹고 쇼핑을 다시 하러 가고 싶어 졌다.


아침에 출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벅차 같은 옷만 계속 돌려 입었는데 이런 내 상태에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옷 매장에 도착하자마자 어제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입고 싶은 옷을 찾아 헤맸다. 결국 내 손에 몇 개의 쇼핑백이 쥐어졌다.







감히 신자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성당, 기도와는 담을 쌓고 지내왔다. 하지만 마음이 힘들 때 마지막 수단으로 결국 종교를 찾게 되었다.



누군가 끝까지 내 곁에 있어줄 거라는 신부님의 말씀은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내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풍랑에 휩싸이기보다 그 풍랑을 참고 이겨내는 것, 그래서 내일 더 단단해질 나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져보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끔은 반차를 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