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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24. 2021

가끔은 반차를 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컴퓨터를 급하게 끄고 가방을 챙겼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지만 괜히 설레었다.







금요일 오후, 입사 후 처음으로 반차를 냈다.



연차를 낼까, 반차를 낼까 고민하다 하루를 온전히 건너뛰기에는 마음이 찝찝할 것 같아 반차를 쓰기로 했다.


오전에 업무를 시작하면서 계속 시계만 쳐다봤다.


몇 시간 후면 퇴근을 할 수 있다니, 괜히 마음이 설레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나 둘씩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었다.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에서 다 나간 후, 가방을 챙기고, 슬리퍼에서 운동화로 갈아 신고 컴퓨터 전원을 껐다. 살짝 눈치가 보여서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회사 건물 밖에 나오자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나만 혼자 퇴근해서  집에 가는 기분은 짜릿했다.


반차를 낸 날이 금요일이서 더 신이 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현미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엄마가 지난번에 두고 가신 돼지고기 볶음을 프라이팬에 볶고 로메인을 깨끗이 씻고 참깨 드레싱을 듬뿍 뿌렸다.


혼자 먹는 집밥은 쉼 그 자체였다. 



밥을 다 먹은 후 문득 세탁기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옷들을 주워서 세탁기에 넣었다. 원래 주말에 하려고 했던 건데 그냥 지금 돌리고 싶었다.



세탁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리모컨을 집어 들고 티브이를 켰다. 마침 얼마 전 시작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베개를 머리에 베고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금요일 대낮에 누워서 티브이를 보고 있다니,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다.







삐뽀 삐뽀



세탁이 끝났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누워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지 드라마는 이미 끝나 있었다. 얼른 일어나서 다 된 빨래를 건조기에 옮겨 넣었다.



덜컹덜컹  


건조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잠을 자고 싶었다.

반차를 내고 한다는 게  고작 대낮에 낮잠을 자는 거라니, 이래도 되나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고 싶어서 신청해둔 북 토크가 있어서 몇 시간 후 집을 나서야 했다.

반차를 낸 이유도 북 토크에 가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뜨니 두 시간여 정도가 지나있었다.

낮잠을 자고 나니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기분 좋은 개운함이 온몸에 퍼졌다.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퇴근시간까지는 몇 시간이 남이었었고 퇴근시간 전까지 북 토크 장소에 미리 도착해 있고 싶었다.



훤한 대낮에, 그것도 텅텅 빈 지하철에 홀로 올라타는 기분이란.



북 토크 장소에 도착해서 시간이 남아 근처를 걷다 경의선 숲길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숲길을 따라 걸어보았다. 길 양쪽으로는 이쁜 카페와 루프탑 레스토랑들이 즐비해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저기서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는 사람들은 다 누굴까? 학생들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고 또 걸었다.


길이 너무 이뻐서 사진도 찍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숲길 끝에 다다랐다.

발걸음을 뒤로 돌려 북 토크 장소로 향했다.





회사 밖 풍경을 조용히 감상하다 보니 심각하고 무거웠던 마음은 어느새 들뜸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차가 주는 휴식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달리기만 할 때는 잠시 멈춤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멈춤을 자주 해서 내 마음을 잘 환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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