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 Jun 18. 2021

옆자리 동료가 해고를 당했다


"요즘 얼굴이 너무 어두워보이던데, 무슨 일 있나요?

영업하는 사람은 좀 더 진취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수습평가를 하는 날, 사장이 회의실에서 이런 말을 하자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간 해외영업을 하며 들었던 여러 평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입사 첫날,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의 첫날이 떠올랐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창문 틈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들이 살짝 보였다.


아, 이분들이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이구나, 떨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여직원들은 나에게 친절했다.


그중 한 명은 온화한 사람은 온화한 사람을 알아본다며 나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그 말이 싫게 들리지는 않았다. 다들 싹싹하고 본인이 맡은 일을 잘하는 것 같았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커피도 쏘고 편의점에서 과자를 사서 나눠주기도 했다.


회의를 할 때 그들은 사장과 상사에게 공격적이고 날카로웠다. 이전에 다닌 직장들과는 분위기가 매우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고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갑자기 여직원 한 명이 퇴사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간격으로 여직원 세명이 연속으로 퇴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점심을 같이 먹으며 회사에 대한 불만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꺼번에 다 나갈 줄이야.  


더 놀라운 건 이들이 다 나가고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 나보다 한 달 먼저 입사한 직원이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수습 3개월을 딱 마치던 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 해서 의지를 많이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내 의지로 그만둔 사람들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가게 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이 짐을 싸서 사무실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힘들었다. 해고를 당한 경험이 있기에 남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다시 해고를 당할 수 있을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시끌벅적했던 사무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음속으로 의지했던 직원까지 나가버리자 일하고 싶은 의욕이 뚝 떨어졌다. 표정관리도 못하고 일찍 퇴근해버리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모습은 안 그래도 적막한 사무실에서, 몇 안 되는 인원 속에서 더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곧 나도 수습평가를 받게 될 거라고 했다.






수습 평가 당일, 이 회사에 들어와서 어떤 일을 했고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자기 평가라는 것도 해야 했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했다.


PPT에 그동안 했던 일을 쭉 나열했다. 나름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일하면서 천천히 배워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서 나를 보는 입장은 달랐던 것 같다.


내가 더 적극적으로, 진취적으로, 그리고 자신감 있게 일하기를 원했는데 면접에서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너무 다르다고 했다.


해외영업을 하려면 좀 더 활발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 질문에 사무실 밖, 거래처들 사람들과 있으면 나는 활발하다,라고 짧게 대답해버렸다.






다시는 이런 말을 안들을 줄 알았는데, 이 상황에 처해있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성적이고 보수적인 내 성향이 그들 눈에 안보 일리가 없었다. 아직 영업적으로 경험이 특출 난 것도 아니고 영어와 스페인어를 한다는 이유로 어찌하다 보니 다시 들어가게 된 회사였다. 회사에서는 스페인어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직원들이 그렇게 나가버리자 과연 이 회사에 얼마나 있을 수 있을까? 나도 해고를 당하면 어쩌지? 두려움, 불안감 때문에 사무실에서 눈치를 보며 더 조용히 있게 되었다. 열심히, 잘하고 싶은 의욕은 사그라들었다.  

하루하루 버티기에 바빴다.







해외영업직에 대한 내 성향을 언급했을 때, 어쩌면 그들이 나를 더 정확하게 본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이미 그들은 나를 훤히 내다보고 있는데 나만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날카로운 비판이 오고 간 수습평가가 끝나고 착잡해진 기분으로 자리로 들어왔다.



"너무 놀란 건 아니죠? 시장개척은 저랑 잘해봅시다" 회의실에 같이 있던 팀장님이 웃으며 말을 했지만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지금 처해있는 상황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었다. 일부러 약속을 잡고 사람들을 만나 내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럴수록 마음만 더 공허했다. 결국 이 또한 내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 상황을, 고민을, 감정을 다 털어내기로 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는 상황이 어려워서 어떻게든 빨리 매출을 올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업부서에서 활발하게 움직여줘야 하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 나가버렸다. 직원들이 매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나갔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들이 왜 저렇게 날이 서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짐은 고스란히 나에게로 넘어왔다.


내향성의 성격을 가진 내가 정말 문제인지 회사 상황이 문제인지 이 또한 혼란스러웠다.

 

회사와 나의 뜻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서로가 헤어지는 게 당연하겠지만 내 성향을 탓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래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그래야 했다.






나 자신을 탓하고 싶지 않지만 이 길이 맞는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옆에 있어줘서, 흔들리며 불안해하는 내 마음을 다시 붙잡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을 홀로 보낸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