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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27. 2022

미국에서의 첫 끼



"담배냄새가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조수석에 앉자마자 담배냄새가 진동을 했다. 마스크로 얼른 코를 가렸는데도 콜록콜록 기침이 나왔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찾은 후 차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차 냄새가 고역이었다.





혹시 일본인 동료는 괜찮을까?


막상 차를 바꾸자고 말하지는 못하고 돌려서 냄새가 심하다고 했지만 그는 미국에서 운전할 생각에 들떴는지 냄새가 잘 안 난다고 했다. 그가 괜찮다고 해서 그냥 가기로 했다.  하긴, 시간도 늦었고 장시간 비행에 몸도 피곤해서 차를 바꾸고 기다리는 게 오히려 힘들 것 같았다.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고 차 안을 살피더니 일본인 동료가 모는 차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공항 주차장을 빠져나가자 영어로 된 표지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 미국에 도착했다! 마음에 금세 들뜨고 설레었다.




화려한 불빛 대신 우리가 마주한 건 라스베이거스의 컴컴한 밤거리였다.  시내와 떨어진 곳이어서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시계를 보니 거의 밤 11시였다.


가방도 없이 호텔로 가는 것도 좀 그랬다. 혹시나 싶어 일본인 동료에게 배 안 고프냐고 물으니 그가 어디 가서 밥이라도 먹자고 했다. 마침 저 멀리 맥도널드 표지판이 보였다. 그가 핸들을 틀어 맥도널드 주차장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니 다른 곳이었다.







메뉴판을 보는 내내 침묵만 흘렀다.






맥도널드 대신 우리가 들어간 곳은 미국식 식당, Dennys라는 곳이었다.  


마침 그곳도 24시간 영업하는 곳이었다. 미국에 왔으니 도착 기념으로 미국 음식을 먹기로 했다. 하지만 메뉴에는 팬케이크, 오믈렛, 감자튀김, 스테이크 등 고칼로리 음식밖에 보이질 않았다. 평소 야식을 거의 안 하는데 밤 11시에 이런 음식을 먹어야 한다니 갑자기 속이 메슥거렸다. 일본인 동료 역시 한참이나 메뉴판을 이리 보고 저리 보기만 했다.









학생 시절, 미국에서 5년 동안 살았지만 미국 식당에 간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학생이었고 돈을 아껴 써야 했기에 한번 가면 10불, 20불씩 나가는 외식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주말마다 월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꼭 사는 게 있었는데 바로 양배추였다. 양배추를 잘게 썰어서 기름에 볶다가 고추장을 살짝 넣었다. 볶은 양배추를 밥이랑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속이 편했다. 미국 학생들은 카페테리아에서 햄버거, 피자, 스파게티를 먹으며 어떻게 속을 감당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하물며 어떤 친구는 빅사이즈 초콜릿바를 먹으며 그게 점심이라고 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식비를 아끼려고 할 수 없이 고안해낸 양배추 요리였다. 양배추를 볼 때마다 돈 아끼려고 해먹은 그때의 요리가 생각나서 한동안은 양배추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영양가 있는 식단이었다. 최근에는 다이어트한다고 다시 그렇게 해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최근에는 볶은 양배추에 고추장과 올리고당을 살짝 섞은 후 치즈를 얹어서 먹기도 했다.









일본인 동료와 나는 아직도 뭘 먹을지 못 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라틴계 사람 여러 명이 우르르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우리보다 먼저 주문을 했다. 엿들어보니 다들 팬케이크를 시키는 게 아닌가.



결국 일본인 동료는 오믈렛을 시키고 나는 스테이크를 시켰다. 아무래도 밀가루보다는 단백질인 고기를 먹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미국에서의 첫 음식이라 기대를 했는데 솔직히 음식의 퀄리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스테이크에서는 살짝 비위가 상하는 냄새가 났고 오믈렛도 그저 그랬다. 같이 시킨 콜라는 김이 거의 빠져있었고 양이 어마어마해서 몇 모금 마시다 말았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웨이트리스가 수시로 음식이 괜찮은지, 더 필요한 게 없는지 상냥하게 물었다. 맛이 별로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괜찮다며 웃어주었다.



건너편 라틴계 사람들이 있는 테이블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벌써 팬케이크가 서빙이 되어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팬케이크를 먹는 게 망설여지던 나와는 달리 팬케이크를 앞에 둔 그들의 표정은 너무도 해맑고 행복해 보였다.



꾸역꾸역 내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다 먹으려고 애를 썼지만 양이 너무 많았다. 일본인 동료도 오믈렛을 반 정도 먹더니 결국 포크를 내려놓았다.







"This is America, hahaha"  


일본인 동료가 시끌벅적한 옆 테이블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들 앞에 놓인 팬케이크를 보니 나도 먹고 싶어졌다.


내일 아침에는 브런치로 꼭 팬케이크를 먹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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