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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n 21. 2022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 산다는 것

비행기에서 내리자 "Welcome to Las Vegas"라는 화려한 색감의 표지판이 보였다.


드디어,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몇 년 전, 다른 회사에 다닐 때 라스베이거스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휘황찬란한 분수쇼가 내 눈앞에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서부에서 그 유명하다는 인 앤 아웃 햄버거도 처음 맛보았다. 프랜차이즈 햄버거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줄 서서 기다려 먹은 보람이 있었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던 날, 다시는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거라 확신했다. 라스베이거스가 옆동네도 아니고, 미국의 이 거대한 도시에 내 평생 다시 올 날이 있을까? 확률적으로 봐도 기회는 거의 제로였다. 한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밤바람을 느끼며 그렇게 이 도시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하지만 삶은 때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공항에서 가방을 찾는 곳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의 가방은 나오질 않았다. 도착한 가방은 하나둘씩 주인을 찾아갔고 몇 개의 같은 가방만 수하물 벨트 위를 계속 돌고 있었다.



갑자기 일본인 동료가 한국에서 구매한 유심칩을 꺼내더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런데 갑자기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리며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지 보니 유심칩을 바꿔꼈는데도 인터넷이 안된다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유심칩을 같이 살 때 일본인 동료의 핸드폰은 처음 들어보는 삼성의 어느 기종이었다. 갤럭시 노트도 아니고 S 시리즈도 아니었다. 그는 제일 저렴한 기종을 샀다고 했다. 유심칩을 살 때 직원이 그의 핸드폰을 지원하는 유심칩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유럽지역이랑 연계가 되는 유심칩을 추천해서 그걸 구매했는데 그게 지금 작동이 안 되는 거였다.  


어떻게 된 일이지? 설마 직원이 안 되는 유심칩을 추천하지는 않았을 텐데.


IT와 친숙하지 않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는 몇 번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더니 결국 할 수 없다며 체념을 했다.


만약 일본에서 이런 일이 생겼으면 바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을 텐데 본인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게 한국에 살면서 언어 때문에 겪는 애로사항이라고 했다.


고객센터?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에게 유심칩이 들어있는 봉투를 달라고 했다. 겉면에 24시간 채팅상담을 연결할 수 있는 번호가 있었다.


내 핸드폰으로 번호를 누르니 바로 상담사와 톡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의 핸드폰 화면을 사진 찍어 보내자

상담원이 혹시 핸드폰 비행기 모드 버튼이 켜져 있는지 확인을 해보라고 했다. 버튼을 끄니 바로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웠던 일본인 동료의 얼굴이 환해졌다.


상담원의 도움을 받아 버튼 하나 클릭했을 뿐인데 그에게 도움을 줘서 왠지 뿌듯했다.






예전에 미국에 살 때였다. 영어가 서툴러서 은행에, 통신사에 어떤 문의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해야 할 때면 항상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미리 종이에 요점을 적은 후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혹시라도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 매번 걱정을 하며 통화를 할 때마다 긴장을 했다.


한국어가 서투른 일본인 동료의 마음이, 그 상황이 백번 이해가 갔다.






가방은 결국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내렸을 때 환승시간이 짧아서 우리가 탄 비행기에 가방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은 거였다. 항공사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니 다음 비행기가 새벽 1시에 도착한다며  우리가 머무는 호텔로 가방을 갖다 준다고 했다.


아이고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행히 메고 있던 책가방에는 치약, 칫솔, 클렌징 폼과 로션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가방에 넣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얼굴은 제대로 씻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나저나 내일 가기로 한 그랜드캐년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은 빨리 호텔에 가서 쉬고 싶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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