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국내선을 타려면 에어 트레인이라는 걸 타야 했다. 지상 열차 같은 건데 나랑 일본인 동료 둘 다 어디서 타야 하는지 헷갈렸다. 다행히 친절한 공항직원의 도움으로 바로 찾아갈 수 있었다.
에어 트레인을 타는 곳은 탁 트인 곳이었다. 일본인 동료가 갑자기 마스크를 내리더니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를 맡아보라고 했다. 그러더니 건물 난간 쪽으로 가더니 풍경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그의 뒷모습이 참 설레어 보였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뒷모습을 찍었다. 출장이 끝나고 한국에 가서 주면 이 친국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나도 얼른 마스크를 내려보았다. 숨을 크게 들이시니 청량하고 산뜻한 공기가 코안에 감돌았다.
라스베이거스에 가지 말고 그냥 샌프란시스코로 튀자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곧이어 에어 트레인이 도착했다.
열차 안에 들어가자마자 옆에 있던 백인 남성 2명이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게 들렸다. 악센트는 영국 아니면 호주 쪽이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그들을 쳐다봤는데 이분들, 마스크를 안 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쪽을 보니 마스크를 낀 사람이 한 명이 없었다. 일본인 동료와 나만 유일하게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직까지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껴야 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국내선 항공을 타려면 다시 체크인을 한 후 보안을 위한 검색 절차가 남아 있었다.
가방에 있는 노트북을 빼서 핸드폰과 함께 바구니에 넣었다. 신발도 벗고 걸치고 있던 재킷도 벗어서 올려놓았다.
바디체크를 하기 위해 내 키보다 높은 둥근 투명 플라스틱 통에 들어갔다. 손을 위로 향해 뻗고 두발은 바닥의 하얀색 구두자 국위에 올렸다. 그윽하고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직원이 검사가 끝났다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다른 여자 직원이 내 팔과 겨드랑이, 다리를 꼼꼼히 훑더니 가도 된다고 했다.
서둘러 다시 가방을 챙기는데 마침 어떤 백인 여자가 나처럼 엑스레이를 찍고 나왔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몸을 훑었던 직원이 이 여자에게는 그냥 가라고 했다. 그러자 이 백인 여성이 크게 땡큐,라고 하면서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검사하고 저 여자는 왜 검사를 안 하는 거지? 반바지를 입어서인가? 아닌데, 저 두꺼운 후드티에는 뭐라도 하나 숨겨져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순간 잊고 있던 어떤 감정이 불쑥 찾아왔다.
미국에 살 때였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좋은 추억들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 겉으로 크게 드러나는 않아도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 말투에서 미묘하게 읽을 수 있던 차별을 당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노트북을 다시 가방에 담는데 잊고 있던 순간들이 필름처럼 지나갔다.
순간 이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는데...
하지만 다행이었다. 나는 미국에 더 이상 살고 있지 않으니까.
기분 나쁜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재킷을 몸에 걸치고 핸드폰을 챙겼다.
라스베이거스행 게이트는 보딩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역시나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에서는 벗으라고 해도 계속 쓰는데 이곳은 이미 마스크에서, 아니 코로나에서 자유로워진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