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

by 마리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일본인 동료가 먼저 나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벽에 써진 "Welcome to San Francisco"라는 큰 글씨와 영어로 된 표지판을 보니 미국에 도착했다는 게 드디어 실감이 났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 입국심사를 위한 긴 줄 뒤에 섰다. 가방에서 미국 비자, 백신 접종증명서, 출국할 때 받은 코로나 음성 결과서를 꺼내 손에 쥐었다.


코로나 이후 미국에 오는 건 처음이라서 어떤 서류를 언제 보여줘야 되는 건지 몰라 일단 파일 하나에 다 집어넣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에 몸은 지쳐있었다. 서서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저 줄이 빨리 줄어들길 기다리는 것뿐.



사실 라스베이거스에 출장 오기 전, 혹시 근처에 갈만한 곳이 있나 찾아보았다.



그랜드캐년



그랜드캐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로 몇 시간 달려가야 하는 곳이고 나는 운전을 못했다. 하루 정도는 시간을 써야 할 텐데 그럴 여유는 없었다.


일본인 동료가 출장기간 중 렌터카를 운전하기로 했지만 그가 그랜드캐년을 가고 싶어 할지, 그곳까지 운전을 하고 싶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출발 몇 시간 전, 바로 다음 날 일정이 취소가 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하루"라는 빈 시간이 생기게 되었다.







긴 줄에 서서 기다리다가 일본인 동료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내일 일정이 취소돼서 하루가 비는데 혹시 하고 싶은 거 있니?" 친구 같은 그에게 영어로 물어봤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스베이거스에서 갈만한 곳이 어디 어디 있냐고 물었다.


"그랜드 캐년, 하하하" 농담 반, 진담 반의 톤으로 내가 대답했다.


"오 그랜드캐년? 거기까지 얼마나 걸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아마 운전하면 두세 시간 걸릴 거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한마디를 더 했다.


"우리가 라스베이거스에 언제 또다시 올지 모르는데, 일생에 한번 있을 수 있는 기회인데 그랜드캐년을 보고 가면 좋지 않을까, 호호호"


일정이 비었고 멀리까지 왔는데 이 기회를 잘 활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본인 동료가 가기 싫어도 괜찮았다.


어차피 나는 운전을 못했다.


하지만 그의 동의를 꼭 얻고 싶었다.


그랜드캐년에 가고 싶었다.







그가 갑자기 핸드폰을 보기 시작하더니 긴 줄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가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대답을 아직 듣지 못했다.


이것도 일본인의 습성인 걸까. 가고 싶은지 아닌지 바로 대답을 안 하는 게 의아했다.


가기 싫은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기로 했다. 더 이상 안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핸드폰을 나한테 내밀었다. 그랜드캐년까지 어떤 코스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괜찮으면 투어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투어버스든 뭐든 그랜드캐년만 갈 수 있다면 다 좋았다. 장시간 비행으로 방금 전까지 피곤했던 몸이 갑자기 멀쩡했다.


그런데 순간, 네비 찍어서 가면 될 텐데 가기 싫다고 말하기가 좀 그래서 투어버스를 얘기한 걸까, 이런 생각이 스쳤다.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는데. 나 역시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다시 핸드폰을 보여주며 투어 중 여러 옵션이 있는데 미리 예약을 하면 내일 새벽 출발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저 정도로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가기 싫은 건 아닌가 보다, 하고 안도했다.


일단 짐부터 찾고 각자 예약을 하기로 협의를 보았다.










입국심사를 위해 한 시간 정도 서서 기다린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입국심사를 할 때마다 왜 이렇게 떨리는지.


투명한 플라스틱 창문 너머로 덩치가 큰 백인 남성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그가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미국에 오는 이유가 뭔지 물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전시회가 있다고 하자 며칠 동안 머무를 거냐고, 어디서 묵을 거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호텔에 있을 거라고 하니 예약 확인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혹시나 해서 미리 프린트해 간 걸 보여줬다. 그리고 전시회 초청장 같은 게 있냐고 묻길래 그 서류도 바로 꺼내 보내줬다.


혹시 몰라 모든 서류를 프린트하길 정말 다행이었다.


여느 입국심사 때보다 질문을 더 많이 받았고 보여달라고 서류도 많았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긴장이 되었다.


내가 건네 서류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드디어 여권에 쾅, 도장을 찍어줬다.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일본인 동료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나처럼 질문을 많이 받았나 싶어 물어보니 그는 질문이 별로 없었다며 금방 끝났다고 했다.


그렇구나, 왜 나만 오래 걸린 거지? 의아해하며 일단 가방 찾는 곳으로 갔다.


시계를 보니 환승할 시간이 한 시간 반 정도밖에 남지 않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러 빨리 타기 위해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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