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을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

by 마리

저녁식사 시간이 끝나고 기내 등이 꺼졌다.


사람들이 티브이를 시청하거나 잠에 들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여 앞 좌석 밑에 놔둔 가방에서 무릎담요를 꺼냈다.


코로나 때문에 기내에서 담요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비행기에서 오들오들 떨고 싶지 않아서 집에서 따로 가벼운 무릎담요를 챙겨 왔다. 그런데 내가 탄 아시아나항공에는 좌석마다 담요, 칫솔, 치약 그리고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항공사에서 제공되는 담요는 몸에 덮고 내 무릎담요는 돌돌 말아서 목 뒤 쪽에 감았다. 그랬더니 훌륭한 목베개가 되었다.


갑갑했던 운동화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었다.


드디어 나만의 세계로 떠날 준비가 되었다.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틀어주는 화면으로 가서 플레이리스트를 찾았다.


예전에 대한항공을 타고 장시간 비행을 할 때였다. 우연히 윤상 노래를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났다. 옛날 가수들의 노래가 꽤 있었는데 플레이리스트 담당자가 전체적으로 선곡을 참 잘했다고 느꼈다.


나는 착륙할 때까지 윤상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약간 우울하면서도 몽환적인 멜로디는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기에는 딱이었다.


졸리면 헤드폰을 낀 채 꾸벅꾸벅 졸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상의 저음 목소리는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창문 쪽에 앉았었는데 창문을 열면 온 세상은 깜깜했고 신비로운 느낌이 감돌았다.


자다가 중간 목이 마르면 스튜어디스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했고, 건조한 목을 촉촉이 적시며 다시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뺏겨다를 반복했다.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하늘 위에서 듣는 음악은 그 어떤 장소보다 여운이 오래갔다.


그러다 눈을 떴을 때, 화면에 도착지까지 남은 시간 6시간, 이라고 떴을 때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구나.






이번에 아시아나를 탔는데 내가 찾던 윤상, 혹은 윤상과 비슷한 음색의 가수는 없었다.

옛날 팝송, 모르는 가수로 가득해서 사실 좀 실망을 했다.


플레이리스트를 이리저리 누르다가 빌리 조엘의 New York State of Mind라는 곡을 찾고 바로 듣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가는 길은 아니지만 미국행 비행기라서 왠지 듣고 싶기도 했고 재즈풍의 멜로디가 듣고 싶었다.


이 노래는 크리스마스 시즌, 특히 뉴욕의 가을, 겨울을 연상케 했다.


사실, 출장 일정이 끝나면 개인 휴가를 내서 뉴욕에 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생각으로만 그쳤다.


회사일로 출장을 가는 거고 또 중간에 딴 데로 빠지는 건 같이 가는 동료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이 결정은 사실 잘 한 결정이었다.


모든 일정이 끝난 후, 뉴욕은 커녕 빨리 한국에 빨리 가서 쉬고 싶었으니까.







몇 시간 후, 기내방송에서 익숙한 멘트가 흘러나왔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희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비행기는 약 30분 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지금 현재 샌프란시스코 날씨는...."


글을 쓰는 지금도 다 외울 정도로 참 익숙한, 몇 년 만에 듣는 이 멘트.


비행기가 서서히 고도를 낮추자 창문 밖으로 미국식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거대한 광경이 펼쳐졌다.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는 참 맑고 청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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