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었고 칼퇴를 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버스정류장에 누구보다 더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B 회사를 다닐 때 나의 통근 시간은 넉넉잡아 2시간이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버스를 한 시 간 정도 타고 지하철로 갈아탄 후 30분을 더 가야 했다. 아침 출근길 버스는 사람들로 꽉 차서 거의 매일 서서 가야 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팔걸이에 몸을 맡긴 채 눈을 떴다 감았다 하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은 지상에 있어서 계단도 올라야 했다.
나의 출퇴근길은 정말 힘들었다.
회사에서 집으로 올 때는 반대로 지하철을 먼저 타고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지하철은 항상 제시간에 도착했는데 버스가 문제였다. 보통 버스는 늦어도 10분에서 20분 만에 정류장에 도착하곤 했다. 이날도 나는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서있었다. 여름이었고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도로는 후끈후끈 달아올랐고 퇴근한 직장인들이 한두 명씩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빨리 버스가 도착해야 할 텐데.
마음이 초조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되어가는 즈음 멀리서 내가 타야 하는 버스 번호가 보였다. 정류장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너무 오래 서 있었더니 다리가 아팠다. 버스가 보이자마자 우르르 앞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어떻게 1시간을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갑자기 온몸에 짜증이 몰려왔다. 참고 참았던 마음이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매일 저 틈을 비집고 달려갔건만 그날은 도저히 그럴 용기가 안 났다.
버스 안내판을 보니 10분 후 다음 버스가 온다는 표시가 보였다. 나는 다음 버스를 타기로 하고 지금 막 도착한 버스가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태우고 가길 바랬다. 하지만 이미 반은 꽉 찬 버스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남긴 채 떠나버렸다. 이를 어쩌나. 얼굴과 등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오늘 나는 집에 갈 수 있을까?
칼퇴를 한 게 허망하게 느껴졌다. 내가 이러려고 이렇게 일찍 나왔나? 얼마 후 버스가 도착했다. 아까 버스를 못 탄 사람들이 다시 버스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저 틈을 비집고 가야 하나 망설이다가 포기했다. 이미 몸은 기진맥진해진 상태였고 달려갈 힘도 나지 않았다. 왠지 이번에 이 버스가 사람들을 좀 태우면 그나마 다음 버스는 좀 비어서 오지 않을까 싶었다. 두 번째 버스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버스가 금세 도착했다. 이번에는 꼭 타야 하는데 하면서 걱정스럽게 슬슬 앞쪽으로 걸어갔다. 버스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데 웬일로 안쪽에 빈 좌석이 몇 개 보였다.
나는 있는 힘껏 달려 최대한 버스 근처로 갔다.
버스는 다행히 내 앞에 섰고 제일 먼저 버스에 탈 수 있었다. 그리고 빈 좌석에 바로 앉았다. 이제 살았구나 싶었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다되어 가고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허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았다. 온몸이 피곤했다.
퇴근길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버스가 보이면 나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꽉 차서 발 디딜 틈 없는 버스에서 1시간을 서서 가다가 내리면 몸은 녹초가 되었다.
언제였더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목을 빼고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 고 있었다. 버스가 보이자 사람들을 따라 버스 쪽으로 뛰었다. 가까스로 버스를 탔는데 안이 너무 꽉 차서 나는 기사님 옆에 서게 되었다.
그런데 제일 마지막에 탄 어떤 아저씨는 계단 위로 못 올라오 게 되었고 할 수 없이 앞문 계단 쪽에 서서 가게 되었다. 저분은 어떡하나, 내심 걱정이 되었는데 아저씨가 가방을 앞쪽 창 문 쪽 공간에 툭 던지더니 팔짱을 끼고 맨 앞 좌석 가림막에 등을 기댔다. 그러더니 뻥 뚫린 버스 전면 유리창을 바라보면서 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여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계단 밑에 서 있는 아저씨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 버스가 와도 나는 더 이상 뛰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가 꽉 찰 때쯤 계단 위로 올라갔다. 나는 마지막 탑승객이 되기로 했다. 운전사 아저씨가 아가씨, 문 닫으니까 조심해요! 하면 나는 문이 닫히도록 계단 위에 올라섰다가 문이 닫히면 다시 내려가 문 옆에 섰다.
버스가 출발하면 등을 뒤로 기댔다. 뻥 뚫린 유리창 너머로 내 앞으로 옆으로 쌩쌩 달리는 차들이 보였다. 버스가 달리면 질주하는 속도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옆에 다닥다닥 붙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버스 앞문 자리는 퇴근길 나의 명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