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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Feb 23. 2024

10. 내가 만족하면 충분한 여행



버스는 달리고 달려 드디어 도쿄역에 도착했다.


버스에 내리면서, 일본인 운전사님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며, 다시 한번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라고 했다.


운전사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게 뭐라고, 모르는 사람의 친절에 나도 모르게 여행 첫날부터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도쿄역은 언제 와도 기분이 좋다. 해외에서, 일본 전국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캐리어 가방을 들고 총총총 걸어가는 그 모습에, 그 대열에 나도 합류한 것 같아서 더더욱.


버스밖으로 나오자 공기가 꽤 쌀쌀했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서 집에 두고 온 패딩조끼가 생각났다.


원래 나의 야심 찬 계획은 도쿄역 근처,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맛집에 가보는 거였는데 추워서 가기가 싫어졌다.  


그럼 난 어디로 가야 하지?






그러다 도쿄역의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동안 몇 번이나 도쿄역을 왔음에도 이곳을 제대로 구경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마침 배도 고팠고, 푸드코트,라고 쓰인 싸인이 보여서 계단을 내려가보았다.



아니 지하에 이런 곳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에는 각종 애니메이션의 문구류들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있었다. 평소, 애니메이션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휙휙 돌아갔다. 귀엽고 앙증맞은 제품들이 정말 많았다. 인형들과 각종 아기자기한 제품들을 보니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헬로키티 매점에서 맘에 드는 키링을 발견했다.


이 키링을 살까 말까, 몇 번을 망설였다. 가격은 만원이 조금 넘었었다.


과연 내가 이걸 가면 정말 가지고 다닐까? 열쇠도 안 쓰는데 이걸 어디에 쓰지? 고민에 고민을 하다, 결국 사지 않기로 했다.


지금 보기에는 이쁘지만 결국 집안 어딘가에 고이 모셔만 둘게 뻔했다.

(아, 그래도 다시 도쿄에 또 간다면 왠지 사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접고 다시 구경을 하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어떤 매대에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뭐지? 하고 보니 아몬드로 만든 쿠키를 시식하고 있었다. 얼근 옆으로 다가가 직원에게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직원이 바로 오더니 제법 큰 아몬드 쿠키 한 개를 통째로 주었다. 마침 당이 필요했어서 야금야금 한 개를 뚝딱 해치워버렸다.  


공짜로 먹은 게 좀 미안해서 메뉴에 보이는 아몬드밀크 한잔을 주문했다. 가격은 좀 비쌌지만 그래도 건강한 음료, 라 생각하고 빨대를 쭉쭉 빨아 금방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배가 고팠다.


애니메이션 상점들이 있는 곳을 빠져나가니 각종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있는 곳이 보였다. 초밥, 가락국수, 연어덮밥, 카레도 있었고 대부분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날도 추우니 따뜻한 카레 가락국수를 먹기로 했다.


가게 안을 살짝 살펴보니 여행객들이 많아 보였다.


1인석 자리에 앉아 따뜻한 카레우동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니 온몸이 따뜻해졌다.







배도 부르고, 소화도 시킬 겸 도쿄역 밖으로 나오니 아까보다는 춥지 않았다.


그래, 이제는 좀 걸을만하겠군!


이렇게 추운데 도로옆에 핀 주홍색 꽃이 왜 이렇게 신기하고 이뻐 보이던지.


도쿄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던 상점들, 배부르게 먹었던 카레우동까지, 이 정도로도 도쿄여행의 시작은 충분했다. 




https://brunch.co.kr/@marimari/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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