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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May 21. 2024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와, 나 라스베이거스 너무 좋아!"


즐겨보는 여행 유튜버가 라스베이거스에 갔다. 화면 속 유튜버는 뉴욕보다 라스베이거스가 더 좋다며 미국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그곳에서 매우 흥분이 돼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의 화려한 호텔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감탄을 하는 유튜버의 모습을 보며 몇 주 전, 같은 곳에 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 나는 호텔들을 구경하지는 않았다. 그럴만한 심적 여유는 없었다.


사실 이번 라스베이거스는 회사 출장으로 가보는 세 번째 방문이었다.


그곳에 도착 후, 전시회장 부스 세팅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아직 마무리가 안되어서 몇 시간 후 다시 오라는 작업자의 말에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근처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으로 홀로 향했다.


미국 스러움이 물씬 느껴지는 곳으로.


그나저나 라스베이거스의 밤이 이토록 화려하게 했다는 걸 유튜버 영상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알게 되었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 보니 새벽 2시였다.


시차적응이 안 돼서 밤낮이 바뀌어버렸다. 해외에 나가면 이런 일은 항상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라스베이거스와 멕시코에 갔을 때는 유난히 몸이 힘들었다.


독일, 이탈리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돌아온 지 2주 만에 떠나서인 건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가서 체력이 약해진 건지 헷갈렸다.







커리어를 통해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바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것.


다행히 해외영업일을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해외 업체들을 방문하면서,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코로나 기간에는 해외에 갔었던 일들이 꿈같이 느껴졌었고 세계여행을 하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코로나 이후 다시 해외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마치 원대한 꿈을 이룬 사람처럼 마냥 설레었다.


그리고 올해 초, 장기해외출장을 가게 되었을 때 또다시 마음이 일렁였다.


나의 해외출장 스케줄은 이랬다.


3월 초: 독일, 이탈리아 사우디아라비아

4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 멕시코


3월 초 출장을 마치고 다시 한국에 와서 2주 동안 머문 뒤, 4월 초 다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멕시코를 가는 거였다.


멋진 출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몸이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시차적응 때문에 몸이 힘든 줄거리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밤낮이 바뀐 상태로 지내다 보니 몸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고 결국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항생제까지 처방받고 며칠 동안 약을 먹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다시 가서 수액을 맞았다. 끼니때마다 한방 삼계탕, 추어탕 등 몸보신될만한 음식을 챙겨 먹고 홍삼, 마그네슘, 비타민 등 각종 영양제도 닥치는 대로 복용했다.


다행히 미국으로 출발하는 전날, 컨디션은 겨우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라스베이거스는 또다시 시차적응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현지에 도착 후, 오전에 업무를 마치고 시간이 남아 홀로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으로 향했다.


몽롱한 상태로 선글라스를 끼고 신나 하는 사람들 틈에서 걸어보았다. 하지만 온몸에 기운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호텔방으로 들어가 눕고 싶었지만 또 그러기에는 지금 이 시간이 아까웠다. 남들은 일생에 한번 올까 말까 개인돈 들여오는 곳을 나는 회사경비로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호텔에 가는 게 좀 아까웠다.  




그래서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들리는 음악은 흥겹기보다 시끄러웠고 무엇보다 사람들 틈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정신이 혼미했다. 결국 일찍 그곳에서 벗어났다.






다음 날, 전시회장에서 하루 종일 서있으며 사람들과 말을 하다 보니 너무 피곤했다.


하루일과가 끝나고 호텔에 도착하면 옷만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그러다 새벽에 다시 깨서 얼굴의 메이크업을 겨우 지우고 다시 누웠다. 밤낮이 바뀐 탓에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 할 수 없이 유튜브를 멍하니 보다 보면 어느새 준비하고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일어나서 샤워를 간신히 하고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나갔다.


그렇게 전시회장과 호텔만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어느새 라스베이거스를 떠날 날이었다.





마지막날, 라스베이거스 스트립을 혼자 걸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호텔이 근처에 있어서 십분 정도만 걸으면 갈 수 있었다. 라스베이거스는 야경이 이쁘다던데, 벨라지오 분수가 참 볼만하다던데.


하지만 내가 도착했을 때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다. 한 시간 정도면 있으면 곧 어두워질 것 같기는 했다.


이곳저곳 더 돌아볼까 했지만 이상하게 기운이 나지 않았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아무래도 다시 몸살이 날 것 같았다.


서둘러 발걸음을 호텔로 돌렸다. 길을 건너기 위해 어떤 다리를 건너는데 저 멀리 벨라지오 호텔 앞에서 분수쇼가 이제야 시작되고 있었다. 아뿔싸,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쉽기는 했지만 내 몸이 먼저였다.



하늘은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아, 다시 돌아가서 좀 더 구경해 볼까, 여기까지 왔는데.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호텔 근처까지 다 와버렸고 무엇보다 체력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여행 유튜버의 라스베라스 영상을 보다 보니 같은 곳에서 전혀 다른 모습의 하고 있던 당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라스베이거스 거리의 화려한 불빛도, 휘황찬란했던 호텔들도 전혀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약 라스베이거스를 가보지 않고 유튜버의 영상을 봤더라면, 그곳에만 가면 모든 것이 꿈같이 화려하고 즐거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미 라스베이거스를 겪어봐서인지 그들의 영상을 보는 내내 왠지 마음이 씁쓸했다.  


(아, 만약 좋은 컨디션으로 여행으로 갔더라면 또 얘기가 달랐겠지만)


아무튼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 드디어 그곳을 떠날 수 있어서 마음이 참 후련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꼭 그것이 100% 나에게 다 좋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이번 출장을 통해 나라는 사람에 더 알게 되었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조명 아래를 걷는 것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공원에서 홀로 하는 산책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잠만 잤던 호텔
조식 대신 슈퍼에서 통밀빵, 요거트, 과콰몰레, 바나나를 사서 매일 새벽에 먹고 나갔다
구경만 하며 스쳐지나갔던 곳.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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