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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Jul 22. 2024

무기력한 기분에서 빠져나오는 법

주말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싱크대 옆에 있은 작은 아일랜드 식탁에 바로 앉았다.


노트를 펼치고 생각나는 대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오늘은 꼭 일기를 써야 했다.




이상한 무력감에 일도 그 무엇도 손에 안 잡히는 한 주였다. 평소에는 퇴근 후 헬스장에 가서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마저도 하기 싫은 날들이었다.


퇴근하면 빨리 집에 가서 눕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안을 비집고 들어갈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했다.  


얼마 전 일본여행도 혼자 다녀왔고 그래서 재충전이 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을까.


바닥으로 가라앉는 이 마음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꾸역꾸역 일기를 쓰다 보니 "청소"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왔다. 고개를 드니 붙박이장에 있는 서랍이 눈에 들어왔다.


아,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 무의식이 정리가 필요하다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일기장을 바로 덮고 서랍을 다 꺼냈다.


다이소에서 산 접착력이 떨어지는 포스트잇, 어디에 먹어야 하는지 기억도 안나는 처방받은 약, 신을 때마다 벗겨지는 양말을 휴지통에 과감히 버렸다.


서랍 가득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니 마음이 답답하고 울고 싶었다.


언제부터 물건이 이렇게 많아진 걸까. 생각해 보니 출장과 여행을 다니면서 틈틈이 쇼핑을 하며 챙겨 온 물건들이 꽤 많았다. 당시에는 내가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생각하며 아웃렛에서 가방도 샀고 약국에서 파스와 소화제도 몇 통씩 샀다. 그런데 출장을 다녀와서 한 번도 그 가방을 멘 적이 없다. 파스와 소화제도 몇 개월째 상자 그대로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다.


전동칫솔도 눈에 띄었다. 버튼을 누르니 충전을 해야 한다는 표시가 떴다. 그런데 충전 케이블은 또 어디에 있는 거지? 서랍을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휴, 분명 어딘가에 있을 텐데. 이걸 지금 찾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찝찝할 것 같았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있는 틴케이스가 보였다. 혹시 여기에? 하며 잡동사니로 꽉 찬 케이스를 비우니 케이블이 바로 보였다. 이 전동칫솔은 사고 나서 두세 번만 쓰다가 계속 방치 중이었다.


당장 칫솔을 충전하고 서랍정리도 대충 마무리했다.


그래도 물건을 조금이라도 버리니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이 되어가고 있었다.


운동, 그래 운동을 가자. 그래, 오늘은 기필코 운동을 가서 5분을 하던, 10분을 하던 몸을 움직이고 샤워를 하고 오자.


마음을 먹고 운동복을 챙긴 후 읽을만한 책과 노트, 그리고 펜도 가방에 챙겼다. 운동이 끝나면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다.







헬스장 문을 열자 주말 아침인데도 이미 와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되었다.


내 루틴대로 하체와 상체운동을 했다. 천국의 계단을 10분 타고 끝내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오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하체와 상체근육 운동을 번갈아가면 몇 세트를 더했다.  원래의 계획은 20분만 하는 거였는데 하다 보니 40분을 채우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플랭크를 40초 정도하고 일어나니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후다닥 샤워실로 들어갔다. 물을 세게 틀고 머리를 감고 몸을 구석구석 씻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나오자 몸과 마음이 너무 개운했다.


이런 기분을 느낀 게 얼마만인지.






머리를 드라이로 말린 후 내가 좋아하는 카페로 향했다.


역시나 카페에는 미리 와서 책을 읽거나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뇌가 맑아진다고 했던가, 책의 문장들이 쏙쏙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기분이 참 가뿐했다.


왜 그동안 운동을 미뤄왔던 걸까. 주말 오전에 운동을 다녀온 나 자신이 왠지 뿌듯했다.



카페에는 내가 좋아하는 재즈풍의 음악이 계속 나왔다.


책을 읽으며 좋아하는 구절들을 노트에 적으며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황홀했다.









아침도 안 먹고 나왔더니 배가 고팠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통밀 파스타면에 새우와 마늘을 넣고 감바스소스로 맛을 내었다. 올리브유를 듬뿍 넣은 프라이팬으로 미나리 전을 바삭하게 얼마 전 만들어놓은 새콤달콤한 오이무침도 꺼냈다.


소박한 나의 점심이 완성이 되었다.


티브이를 보면서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니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자처럼 마음이 풍요로웠다.








일기를 쓰고 청소를 하고 운동을 했다.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해 먹었다.








매번 일상에서 벗어나야만 충전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단조롭지만 소박한 일상을 통해서도 마음은 충분히 채워질 수 있었다.


무조건 떠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느꼈던 무기력이 나의 일상을 통해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을 마주할 힘이 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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