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만 스쳐도 인연이라고요?
손수건을 붕대 삼아 손에 감고 다녔던 시간들
"너는 왜 손에 손수건을 감고 다녀?"
손수건으로 가린 내 왼쪽 손을 가리키며 같은 반 친구가 궁금해했다.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스페인어로 대화할 때 내 손수건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직접 이렇게 물어보니 당황스러웠다. 일단 스페인어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외국인학교에 입학하기 전 스페인어만 사용하는 에콰도르 현지 학교에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스페인어는 하나도 몰랐지만 학교측에서 괜찮다고 했다. 하루 종일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귀머거리가 된 것 같았다.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몇 마디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스페인어로 말을 하기에는 아직도 서툴렀다.
쿵! 하는 소리가 함께 갑자기 손가락이 얼얼했다. 얼얼했던 느낌은 곧 극심한 통증으로 이어졌다.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택시에서 내리는데 뒷좌석에 함께 앉아있던 사촌동생이 먼저 내렸다. 그리고 내가 뒤따라서 내리고 있었는데 사촌동생이 뒤를 쳐다보지도 않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내 손가락이 그대로 문에 끼고 말았다. 약지 손가락이었다. 너무 놀랐지만 제발 별일이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손가락이 욱신욱신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날 병원은 갔는지, 통증주사는 맞았는지 기억을 도저히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외할머니가 밤새 내 옆을 지켜주셨다는 것.
외할머니는 잠도 안 주무시고 마요네즈를 계속 내 왼손 약지 손톱 위에 올리셨다. 마요네즈가 열을 내려준다고 하셨다. 손가락 주위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마요네즈는 올리자마자 녹아서 계속 흘러내렸다. 외할머니는 흘러내리는 마요네즈를 닦아가며 계속 마요네즈를 올리셨지만 속수무책이었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너무 울다 보니 넋이 나갔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마침 냉장고에 크기가 매우 큰 알로에가 있었다. 외할머니가 부엌으로 가시더니 알로에를 작게 조각을 내서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빨갛게 부어오른 내 손톱 위에 얹이셨다.
"알로에가 통증에 좋다고 하니까 금방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아, 알았지?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외할머니가 땀으로 흥건해진 내 이마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외할머니 말을 믿고 싶었다. 촉촉했던 알로에는 내 손톱 위로 올라가자 손의 열기 때문에 금방 말랐다. 알로에가 마르면 외할머니는 다시 촉촉한 알로에를 얹어주셨다. 울다가 지친 나는 손톱에서 나는 욱신거림을 계속 느끼며 잠에 들었다. 외할머니는 밤새 한 잠도 못 주무시고 나를 간호해 주셨다.
손톱이 다 빠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손톱은 반 정도 들려서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왜 그때 병원에 가서 붕대를 감지 않았을까? 얼마 전 새끼발가락이 골절되었을 때 붕대를 감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 붕대가 얼마나 다친 부위를 보호해 주는지 알 수 있었는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붕대를 맨 적이 없었다.
그 아픔을, 고통을 나는 어떻게 감당했을까?
손끝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던데 손끝만 스쳐도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종이 한 장만 스쳐도 손가락이 아팠다.
내가 너무 불안해하자 외할머니가 꽃무늬가 새겨진 빨간 손수건을 내 손에 살짝 감아주셨다.
그제야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고 그 이후로 나는 항상 손수건을 붕대 삼아 감고 다녔다.
친구에게 내가 왜 내가 손수건을 감고 다니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스페인어로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아프다"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동사, Enfermar가 생각났다.
내가 "손가락이 아프다"라고 말하자 친구가 갑자기 깔깔깔 웃어댔다.
"손가락이 아프다고?" 친구가 반문하며 다시 물었다. 왜 저렇게 웃는 거지? 이해가 안 갔다.
알고 보니 스페인어에는 아플 때 쓰는 표현이 두 가지가 있었다.
고통, 통증을 의미하는 Dolor와 단순히 병에 걸리다, 병이 나다는 뜻을 가진 Enfermarse라는 동사였다.
손가락 통증에는 Dolor라는 동사를 써야 했는데 나는 내 손가락이 병에 걸렸어,라고 말했던 거였다.
그날 이후 나는 Dolor와 Enfermar의 차이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그렇게 손수건을 손에 감고 다닌 지 몇 개월 후, 어느 날 새 손톱이 조금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너무 신기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손톱과 새로 자라나는 손톱은 어느새 함께하게 되었다.
몇 개월 후, 새 손톱은 반 정도가 자라 있었다.
이제는 거의 무감각하게 매달려있는 손톱을 없애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손톱을 떼어냈다.
그런데 그렇게 떼어낸 손톱을 바로 버릴 수가 없었다.
그 손톱에는 에콰도르에서 도착해서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추억, 스페인어가 안 통해서 답답했던 기억, 손수건을 손가락에 항상 감고 지내던 고통의 순간들이 모두 담겨있었다.
떼어낸 손톱에 매니큐어를 곱게 칠하고 작은 상자에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서
손톱을 볼 때마다 에콰도르에서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몇 년 전, 매니큐어가 벗겨져 바래져있는 손톱이 들어있는 상자를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고통과 아픔의 시간들을 이제는 떠나보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