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블랙홀에 빠지다

by 마리

갑자기 온 세상이 까만색으로 변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게 죽는다는 건가...? 그러는 와중에도 의식은 잃지 않았었는지 죽는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블랙홀로 데굴데굴 빠져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이 떴다. 뒤통수가 너무 아팠다. 익숙한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Estás bien? (에스따스 비엔?) Are you O.K?"


너 괜찮니?


같은 반 친구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도로 위에 누워있었고 저 멀리 내 파란색 운동화가 벗겨져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나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외국인학교가 학기를 시작하는 즈음, 스페인어만 쓰는 현지 학교에서 나오게 되었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는 영어로 하는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는 영어를, 학교 밖에서는 스페인어를 쓰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또다시 낯선 환경에 놓인 나는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게 원하던 해외생활이었지만 점점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언어를 배우는 것보다 가족이 더 보고 싶었다.


당시 키토에서 공항 근처에 살았었는데 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때마다 길을 걷는 내 머리 바로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곤 했었다. 그 비행기를 볼 때마다 한국에 너무 가고 싶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날 오후, 학교에서 콘서트가 있어서 집에 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학교 근처에서 도로를 건너려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록색 등이 켜지자 길을 건넜고 바로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나를 쳤던 것이었다. 나는 차가 나를 향해 돌진하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마침 콘서트에 오던 친구네 가족이 길에서 내 사고를 목격했고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내가 차 보닛에 올라갔다가 데굴데굴 밑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상황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다친 데는 많이 없었고 피도 흘리지 않았다. 경미한 사고였다.


하지만 허벅지 쪽이 아파서 일주일 동안 걷지도 못했고 학교도 가지 못했다. 그렇게 쉬면서 학교에 안 갈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좋았다.







그 이후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고 학교에서 카운슬링도 받게 되었다.


그렇게 힘들면 한국에 그냥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패배자가 될 것 같았다. 한국에 가서 고등학교에 가면 다시 수학을 공부해야 할 텐데, 수학이 내 인생을 망치도록 내버려 두기가 싫었다.


우울증 약은 복용한 지 얼마 안 되어 끊었고 대신 나는 카운슬러 선생님과 주기적으로 만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선생님 덕분에 마음 둘 곳이 생겼고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 고등학생들을 보면 정말 어리고 이뻐 보이는데, 나도 분명 그랬을 나이였을 텐데 언어와 문화가 다른 환경에서 가족과 떨어져 마음 둘 곳이 없이 헤매기만 한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누군가 나에게 자녀를 어린 나이에 유학을 보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어린 나이에 언어를 배우는 건 정말 좋은 취지이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는 부모가 꼭 옆에 있어줘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먼 곳까지 가게 되었다. 다행히도 부모님 역할을 대신 해 주신 카운슬러 선생님 덕분에 에콰도르에서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티어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우울증에는 우울증 약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을 나누고 털어낼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외국어를 배우는 것보다 정서적 안정이 더 먼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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