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에콰도르에서 매일 아침 스쿨버스를 탔습니다
스페인어로 다른 나라 국가를 불러야 했을 때
어두 컴컴한 밤 같은 새벽이었다. 가방을 메고 무거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설마 오늘은 버스가 안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전날 에콰도르 티브이에는 하루 종일 데모와 관련된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키토 시내에는 부패정권과 맞서는 시민들의 데모가 있었고 도로가 막혀서 차가 못 다니는 곳이 많다고 했다.
나는 제발 학교버스가 안오길 바랬다.
이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저 멀리서 노란 스쿨버스가 어둠을 뚫고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에콰도르 현지 학교에 다닐 때 노란색 스쿨버스가 매일 집 앞에 섰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노란색 버스는 내가 상상하던 버스가 아니었다. 버스 의자는 매우 딱딱했고 칸은 매우 좁았다. 학교에 도착할 때면 엉덩이가 얼얼했다.
창밖을 쳐다보며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불안하고 두려웠다.
나는 매일 아침 스쿨버스가 안 오기만을 바랐다.
학교에 동양인은 사촌동생들과 나뿐이었고 나만 스페인어를 몰랐다. 멕시코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학생들과 비슷한 교복을 입고 매일 아침 에콰도르 현지 학생이 되었다. 제발 하루라도 스쿨버스가 안오길 바랬지만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제시간에 딱 맞춰 도착하는 스쿨버스가 야속하기만 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조회시간에 에콰도르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고 에콰도르 국가를 따라 불렀다.
"살베 오 빠뜨리아 밀 베세쓰 오 빠뜨리아" (Salve oh! Patria, mil veces oh Patria)
의역을 하면 "만세! 오 우리 조국이여!" 정도가 되겠다.
아직도 저절로 생각나는 이 문장은 에콰도르 국가의 첫 소절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계속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귀에 익어서 따라 부르게 되었다.
음악과 함께 에콰도르 국기가 높이 게양되면 나도 에콰도르 국가를 따라 불렀다.
국가라는 개념을 떠나 노래의 리듬이 경쾌하고 씩씩해서 집에서 혼자 흥얼거리기도 했다. 물론 태극기를 향해 경례!라고 외치던 중학교 운동장이 사무치게 그리운 순간이 더 많았지만.
노란색 스쿨버스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학교로 데려갔다.
"Yo no entiendo español" (저는 스페인어를 몰라요)
옆에 앉아있는 미국 학생이 어설픈 발음의 스페인어로 말을 했다.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학교에 들어갔는데 제2 외국어로 스페인어 수업을 들어야 했다.
수업시간에 옆에 앉아있던 미국인 학생이 스페인어를 못 알아듣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수업은 알파벳부터 기본회화를 가르치는 기초 스페인어반이었다. 그런데 그 스페인어 수업이 나는 전혀 어렵지가 않았다. 선생님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고 숙제도 너무 쉬웠다.
현지 학교를 다니면서 에콰도르 친구들 틈에서 스페인어로 지리, 수학, 과학수업을 들어야 했다. 책을 펼치면 모르는 단어가 대부분이었다. 사전을 일일이 찾아보며 읽었지만 한 문장을 이해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렇게 매일 나는 스페인어와 고군분투하며 지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초회화책을 펼치라니.
내가 그렇게 스페인어와 싸우는 동안 내 스페인어는 기초 수준을 벗어나 한 단계 올라와 있었다.
스페인어로 하는 수업이 더 이상 부담되지 않았다. 일상회화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미국 친구들이 스페인어 발음 때문에 버벅대는 모습을 보니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그 이후 나는 스페인어라는 언어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렇게 가기 싫은 현지 학교를 왜 나는 안 간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학교생활이 그렇게 힘들었는데 바보같이 계속 다녔을까? 하지만 당시 내 옆에는 나의 힘듦을 나눌 수 있거나 조언을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는 힘듦 속에서도 학교를 계속 가는 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타기 싫었던 스쿨버스였는데 덕분에 나는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