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쬐는 겨울 소복이 쌓인 눈처럼 간결한 분께 드리는 선물
저의 부족한 점을 잡는 깐깐한 동료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하는 곳 밖에서도 당신처럼 꼼꼼하고 진득한 사람이 되려 연습하는 중입니다. 아직도 빠뜨리고 덜렁대는 것 투성이지만요.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어주셔서 감사해요.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명료하고 단조로운 당신을 보면 따뜻한 눈, 혹은 찬 겨울의 볕이 떠오릅니다. 눈밭에 홀로 있는 집처럼 쓸쓸해 보이지만 그곳에서 누구보다 안락하고 편안히 계시니까요.
‘깔끔함’, ‘가만함’, ‘조용함’, ‘편안함’. 당신과 참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는 깨끗한 눈이 두텁게 쌓인 겨울, 그 위에 굴러 떨어진 햇살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집을 드리고 싶었어요.
당신이 태어난 겨울에 내린 아무도 해치지 않은 눈에는 그 자체의 순수함이 주는 깨끗함이 있습니다. 당신의 겨울에도 그런 눈이 있었으면 해서 최대한 깨끗한 톤으로 채웠습니다. 여백도 많이 남겼고요. 항상 단정한 색의 옷을 입고 다니는 당신과도 닮았으면 했어요.
더해서 깔끔함과 명확함을 위해 각진 집 표현에도 신경 썼어요. 창과 문틀은 집의 연한 색감과 대비되도록 진하고 깔끔히 칠했습니다. 각지고 규칙적인 생김새는 안정감을 주니까요. 혼자 있을 때 가장 좋아 보이는 당신처럼 편안해 보였으면 했습니다.
그런 집을 꼼꼼히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직감적으로 대충 하기를 좋아하는 제 성격과는 너무 달라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면 그릴수록 꼼꼼하고 세심해야 하는 과정이 당신과 참 닮아서 신기하고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어요.
섬세한 표현을 위해 이번 작품에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재료도 신중하게 골랐지요. 깔끔한 테두리 표현을 위한 뾰족한 색연필, 자연스럽게 번지고 섞이지만 테두리가 깔끔한 마카, 소복이 덮인 눈을 표현할 아크릴 물감을 썼습니다.
창틀과 테두리처럼 면적이 얇은 부분은 뾰족이 깎은 색연필로 채워 넣었어요. 색연필은 연하게 칠하면 종이의 울퉁불퉁한 표면이 그대로 드러나서 희끗희끗해 보입니다. 하지만 꾹꾹 눌러 여러 번 칠하면 희끗한 부분 없이 진하게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여러 색을 차곡차곡 얹어 자연스럽게 섞을 수도 있고요. 진하고 꾸덕한 오일파스텔을 아주 얇게 깎아 사용한다면 비슷한 느낌일까요?
건물 벽처럼 넓은 면적은 자연스럽고 얇게 물든 번짐을 표현하고 싶어서 수채화를 쓸까 했지만 너무 많이 퍼질 것 같아서요. 비슷한 표현이 가능하면서 테두리가 깔끔히 떨어지는 마카를 사용했습니다. 처음 사용해본 마카에는 신기하고 재밌는 면이 많았습니다. 조금 어렵고 까다롭기도 했어요. 마카는 마르기 전까지 정확히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리 다른 곳에 칠해보고 사용해야 해요. 처음 칠하면 너무 진해서 당황스러운 색도 마르고 나면 훨씬 연하고 부드러워집니다. 겉으로는 단단하고 덤덤해 보이지만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예민하고 섬세한 당신이 생각나서 재밌었습니다. 집채만 한 고양이 같달까요.
마카는 보기보다 여러 색을 쌓아 올리기 참 좋았습니다. 마르고 나서 위에 섞고 싶은 색을 칠해주면 물감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물들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진하게 칠해진 부분에 아주 밝은 색의 마카를 덧칠해주면 전체적으로 한 톤이 밝아집니다. 정말 신기했어요. 덕분에 생각보다 너무 진하게 칠한 창문을 연하게 고칠 수 있었지요.
소복이 쌓인 눈은 물을 섞지 않은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했습니다. 지붕에 눈을 올리려면 진한 지붕 색을 덮을만한 재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두텁게 쌓인 눈의 양감까지 표현할 수 있는 아크릴 물감을 여러 번 두껍게 올렸습니다. 물을 섞지 않아 꾸덕꾸덕 얹으니 정말 눈을 내리는 기분도 들었어요.
여백이 넓으니 연필 때와 색연필 가루가 아주 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크릴 물감의 도움을 받아 군데군데 수정한 흔적이 보일 겁니다. 아마 당신 같았으면 애초에 잘못 그리지 않거나 설사 잘못 그렸어도 새로 다시 그렸겠지요? 저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고민의 자국이구나, 생각하고 좋게 봐주셨으면 해요.
저는 섬세함과 거리가 멀지만, 당신 덕에 지금보다는 살짝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비록 이번에도 지붕 위 보리의 원근감을 신경 쓴다는 건 까먹어버렸지만요.
고양이같이 조용하고 섬세한 마음으로 작은 부분에 신경 써주셔서, 느리지만 차분하고 세심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앞으로도 평화롭길, 당신과 똑 닮은 고양이와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래도 너무 혼자 있지 말고 가끔은 집 앞에 놓인 차 타고 만나러 와 주세요. 누구보다 따뜻한 한겨울의 생일 보내셨길 바라며, 생일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