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에게 해준 이야기는 비교적 선명히 기억이 나는데, 아이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많이 말하지 말고 잘 듣기나 할걸.
너무 멀리 보지 말고 딱 하루씩만 살자고,
그것은 본래도 곧잘 했던 이야기였다.
언니, 힘든 날이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에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아요.
그런 푸념을 들었기 때문에,
힘들었지만 오늘을 무사히 버티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리며 하루를 마무리하자고,
그리고 내일도, 너무 멀리 보지 말고 딱 하루만 살자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만큼, 딱 하루씩만 살아가자고.
그게 마지막 하루인 줄 모르고.
그 하루가 허락되지 않은 줄 모르고서.
같이 기도를 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무용한 힘내란 말 대신 사랑한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고생 많았다고 다독일 걸 그랬다.
그러나 우리의 마지막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안다. 그 시간이 허락된 것조차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였다는 걸 안다.
결국 네가 이긴 것인지 모른다.
나는 너를 하루 더 살게 할 은혜를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은 네 고단한 삶을 거두어 가시는 은혜를 예비하셨다.
언니가 틀렸다. 너는 그 맥없는 목소리로도 순순히 네, 하고 순종했지만, 하나님은 결국 네 편을 들어주셨던 게다.
나는 누구보다 눈부시게 살아갈 너의 생과 회복을 꿈꿨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기까지로 이미 족하다고 답하셨다.
네게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만한 것들이 아주 많아 하나님께서는 너를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말에 코가 꿴 너는,
깨끗하여 귀히 쓰이는 그릇이 되겠다는 고백을 올려드리던 너는,
이제 아무데도 사용되지 않아도 족한 안식에 이르렀다.
너를 보내고 한 첫 후회는 내 오만한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
너를 더 귀히 여겨줄걸. 다만 그 후회뿐이었다.
남겨진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사람들이 거룩한 말들로 나를 격려하고 축복한다. 하지만 난 그게 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너의 짧은 생애를 나를 스쳐 지나게 하심이 너에겐 하나님을 좀 더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면, 나에겐 무엇을 위함이었을까. 모르겠다. 그냥 나는 너를 만나서 참 반갑고 좋았다. 그리고 이제 헤어져서 참 아쉽고 슬프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이다.
다만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아픈 중에도 부지런히 밥을 먹었다. 책도 읽고 의미 없는 영상들도 봤다.
일을 하는 건 느리다. 하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기로 한다.
슬픈 날은 울고 즐거운 날은 웃을 것이다.
부지런히 살아가다 보면 곁에 있던 이들 모두 이 같이 하나 둘 작별하겠지.
그러나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지랖 넓은 네가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나는 이제 좀 쉬엄쉬엄 걸어갈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