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진짜로 괴로운 것은 사실 치열한 법리적인 다툼이나 증거 수집의 어려움이 아니다. 대체로는 소통의 문제이고 좀 더 좁혀서 말하자면 결국 거짓말의 문제다.
진실이란 몹시도 주관적이다. 나는 사람들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안경으로 본 세상을 자기 생각으로 한번 더 걸러 전달하고 있는 것뿐이리라.
억울함 역시 주관적이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란 본래 그 주관적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객관적인 정의구현에 소명을 둔 적이 없다. 세상이 다 아니라고 말해도 마지막 딱 한 명, 편을 들어주는 사람, 그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의 치명적인 문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을 곧이곧대로의 객관적인 진실로 받아들이진 않지만, 주관적 측면의 진실성만큼은 지나치게 믿어 버린다는데 있다.
그 사람의 입장, 겪은 일, 생각과 감정과 같은 것들. 그런 건 애초에 주관적인 거니까. 과장되거나 누락되었을 순 있어도, 이 사람 입장에선 진실할 것이라고...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말로 많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 그런 걸 의심하지 않고 매번 곧이곧대로 다 믿는 것이야 말로 초짜 변호사다운 면모인 것이다.
공들여 세운 전략과 논리가 사실은 거짓말을 위해 세워진 집이란 사실을 알게 될 때 너무너무 괴롭다. 너무 멀리 와 버려서 돌이키지 못하고 그 뻔한 거짓말을 계속 유지시켜주어야 할 때는 참담하다.
그런데도 나는 당신 왜 내게 거짓말을 했느냐고 따져 묻지 못한다. 거짓을 진실로 믿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것이지만, 모든 걸 알면서도 작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럴 땐 그냥 다 내 탓 같다.
좀 더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수습을 하도록 설득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의 거짓말을 강화시켜 잘못된 신념에 붙들리게 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망쳐 버린 게 아닌가.
아니 애초에 의뢰인이 거짓말을 한 것도 그냥 내가 신뢰를 얻지 못한 탓 같다.
법원은 일할 때는 사람들의 말을 의심하는 게 아주 지긋지긋했다. 거짓말과 거짓말이 싸우는 와중에 무엇이 진짜인지 가리는 게 정말 괴로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진실은 언제나 가리어진 것으로 느껴졌고, 판단과 진실이 따로 논다고 느꼈다. 그런 막연함과 망망함이 싫어서, 나는 차라리 믿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주관적인 진실일지언정 그 진실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마음을 두었던 주관적 진실이란 애초에 실체가 없다. 허상을 붙들리어 거짓말에 휘둘리는 것이다.
어리석은 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