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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바다거북 Oct 02. 2023

Integrity


내년에는 책상을 뺄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굳혔다.


지난 몇 달간 머릿속의 가장 큰 화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일 년 내내의 고민이기도 했다.


<트로피를 좇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하였다.

<일이 아닌 사람이 우선>인 삶을 살기로 하였다.

그렇게 떠들고 다녔다.


.. 그래? 정말..?

그런데 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 건데.


그 반문을 일 년 내내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의 능력과 한계에 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편이었고, 그런 전망을 기초로 좋은 성과를 내는 편이었다. 자라난 지방의 사투리로 <애살이 있다>라고 불렸는데, 대게 그것은 칭찬이었다.

삶에 터져나갈 것 같이 많은 과업을 밀어 넣어두고서,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건 익숙한 삶의 방식이다.

아니, 다른 삶의 방식을 몰랐다.


과학고를 거쳐 유명대학, 대기업, 로스쿨, 법조계. 만 15살 이후 만난 사람들은 온통 다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속에는 나는 언제나 부족한 지능을 성실함으로 보완하는 축에 속했고,

그나마도 진짜로 <성실함과 노력이 재능>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형편없는 게으름뱅이었다.

그러니까, 슈퍼맨과 슈퍼우먼들로 둘러싸인 내 세계에선 이게 옳을 뿐만 아니라, 당연한 삶의 방식이었다.


공부 좀 한다고 뭐라도 되는 것처럼 띄워주던 청소년기엔 자아가 비대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도 얻지 못할 것 같은 재능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그 탁월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노력 역시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되고 나서는, 나는 소위 성공이 보장된 친구들과 스스로의 삶을 달리 두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이 갈 수 있는 만큼,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만큼,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것이라고.

나는 그냥 내 길을 가면 되는 것이지, 옆 사람이 뛰어가든, 날아가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하지만 올해 들어하게 된 생각은, 비교를 안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이 멍청이야.

여전히 똑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데.

누가 너에게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니.

그 <열심>이 옳은 것이라고 여겼더냐.

이 삶의 구조가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왜 한 번의 의문을 품지 않았던가.


법조계에 몸 담은 이후로 나는 좀, 스스로를 이방인 같은 사람라고 여겼다.

정통 법조인의 코스를 밟지 않은 내게는, 더 높은 자리, 더 좋은 경력을 가지는 일이 당연히 지향해야 할 바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업계의 문화가 언제나 이질적으로 부딪혔다. 사람들이 마치 정해진 레일 위만 달리는 기차처럼 보였다. 정말 가까운 친구들과 나누는 사담에서는 <울타리를 벗어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들끼리 벌이는 노예 투쟁>이라고 거칠게 평가절하하기도 하였다. 혼자 레일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잘난 체를 했던 거다.


ㅡ 하지만 너도 큰 틀에선 같은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잖아.

트로피를 향해 달렸던 청소년기와 청년의 때,

그리고 더 이상 그것을 위해 살지 않겠다고 돌이킨 후에 무엇이 바뀌었니.

정말로 바뀐 게 있기는 하니.


언제나처럼, 여전히, 무언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더 잘하지 못한 것에 자책하면서 살고 있는데.

더 이상 트로피를 얻기 위해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너는, 왜 아직도 이 경주로 위에서 달리고 있니.


나는 정말 몰랐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내가 여전히 경주로에 선 경주마처럼 달리고만 있다는 사실도.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옳다고 믿는 대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멈추어야 할 때라고,

그런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일 년 내내 말씀을 주셨는데,

내가 통 못 알아듣는 것처럼 보였는지, 혹 미적거리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드셨던 겐지,

결국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영혼의 생명을 거두어 가셨다.

<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셔 놓고선, 한 몸을 이룸과 같이 사랑하게 된 후에 생살을 뜯어가듯 그렇게 찢어놓으시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던가.


어젯밤엔 남의 집 개가 죽는다는 소리에 자려다 말고 일어나 꺽꺽대고 울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들을 때마다 내 상실의 고통이 재현된다.


오늘 문득, 그것이 첫 번째 통곡이었음을 깨달았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통곡하지 못하고 눌러둔 이후로 줄곧, 많이 울었지만 소리 내어 울진 못했다.

한번 울음이 터지니 이젠 걷다가도 꺽꺽대고 운다.


서른이 넘으면 더 이상 길바닥에서 우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

내일모레 마흔인데도 여전히 내 삶은 이러하다.

아직 청춘의 때가 다 지나가진 않았나 보다.



나는 살면서 후회라는 걸 별로 해본 일이 없다.

제 아무리 어렵고 아쉬운 이별이라도, 미련에 허우적거릴지언정 후회는 없었다.

부족함이 있었을지언정 그때의 입장에선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다시 돌아가도 다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그러니 뒤따르는 고통의 때는 그냥 견디고 말 일이지, 괜한 후회로 더욱 삶을 괴롭게 할 필요는 없었다.


... 하지만 내가 돌보았던 생명의 죽음은 다르다.

보낼 때는 분명 무한한 감사와 하나님을 향한 신뢰로, 이보다 더 잘 정리될 수 없겠다 싶을 만큼 단정한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히 보이는 건 내 잘못들이다.

오직 나만 아는 과오들.

후회는 짙다.

돌이킬 때를 놓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때때로 식칼처럼 날아와 사지에 박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책임을 맡는 일에 이토록 괴로운 자책과 후회가 수반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제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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