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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린 Jun 12. 2023

덴마크에서 살다 왔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후에야 글을 씁니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뜬금없이 4년 전 덴마크에서의 삶을 브런치에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2019년 하반기 동안 코펜하겐의 UCC (University College of Copenhagen) 대학의 국제교류학생으로서 지냈거든요.


'왜 이제야?' 하는 물음이 자연히 떠오르시겠지만, 제겐 지금이 삼박자가 오롯이 맞는 타이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

지금 한국에서의 삶도 덴마크의 '휘게' 와 같길 바라는 소망,

그리고 내 글이 세상에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요즈음은 '자괴감을 부추시는 시대' 입니다.

특유의 능력주의와 노력주의에 급격히 변하는 사회상이 맞물려 묘한 패배감을 자아내지요.

이런 세상에서는 누구나 잘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묘히 성공과 실패 사이에 짙은 선을 그어놓고 있어요.


게다가 부의 축적이 어느새 가장 큰 성공처럼 여겨진 뒤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분야에서든 필드를 주도하는 건 많아봐야 상위 10%잖아요.

90%에 해당하는 다수도 심적으로 괜찮아야 살만한 곳일텐데, 우리 사회에 불행한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적당한 자기만족은 비전 없는 게으름이 되고, 평범함이 도태로 둔갑하고,

끊임없이 채찍질 당하며 실패도 좌절도 모두 스스로의 부족함으로 귀결되는 곳에서 살아남기란 분명 쉽지 않을 거예요.

지금의 저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직업적인 어려움 -주로 사람을 상대하는- 으로 피폐한 시간을 보내고 퇴근한 어느 날이었어요.

머리에 녹이 슨 것처럼 도무지 아무 단어도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동안 펜을 놓고 있다가,

살아있다는 이유로 이렇게 버티고만 있기에는 너무 억울해서 홀린듯이 모 커뮤니티에 덴마크에 살면서 느꼈던 점을 끄적여 썼습니다.


실패나 답보의 책임을 개인에게 묻지 않는 사회,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들을 모조리 용납하고, 특별함보다는 평범함에서 가치를 찾고, 

그래도 별 일이 없으며, 그 별 일 없음조차 자부심이 되는 세계에서 보고 들은 것을요.


사실 누구 하나 봐주지 않아도 그냥 오늘은 여기가 내 메모장이다, 생각하고 올렸는데 예상보다 크고 또 많은 반응이 있었습니다.

꿈 같은 곳이라는 감상부터 실제로 살아보고 싶다, 이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단편을 엿본 기분이다, 이런 나라의 존재만으로도 희망적이다, 부러우면서 동시에 슬프다까지.


문득, 우리 사회에 이런 담론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나이를 살아가는 우리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실마리를 어떤 다른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꼭 답을 찾지 않아도, 반대의 삶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된다는 것도요.

그래서 좀 더 자세히, 더 많은 분들이 읽으실 수 있도록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쓰고자 합니다.





여러분들께 덴마크는 어떤 나라인지 궁금해요.

멋진 수트를 입은 장신의 남녀가 길거리를 활보할 것만 같은 곳.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나 봤을 법한 색색의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풍경.

하다못해 덴마크 요구르트?

적어도 친숙하기보단, 한국에선 살면서 한 번 가보기에도 쉽지 않은 나라이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지수 최상위를 오래도록 놓치지 않는, 복지 강국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아요.


덴마크 사회는 왜 행복할까?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서 행복을 느낄까?

행복한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소위 말하는 '얀테의 법칙' 은 덴마크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까?


저 역시 코펜하겐에서 '충만히 행복한 삶' 의 키포인트를 알게 된 사람이고,

또 글 쓰는 일을 취미로 하는 사람으로서,

한 번 쯤은 덴마크 사회에서 통용되는 '행복의 필요충분조건'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치로는 드러난 적 없는 그 곳의 진짜 행복을, 제가 겪은 에피소드와 함께 풀어내보려고요.

짧게나마 두 사회를 모두 겪어본 제 생각에는,

사실 우리가 내내 불행하진 않았거든요. 다만 그 행복을 지속하지 못했을 뿐.




북유럽에서 살다 왔다는 게 인생의 가장 큰 자랑인 건 맞아요.

왠지 모르게 멋있어보이는 걸 저도 알기 때문입니다. 하하.

하지만 솔직히, 그 곳에서의 시간이 그리 거창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일단 저라는 사람부터가 대단하질 않으니까요.


교환학생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채로 대학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싶지 않았던 소심한 반항이었고,

홀로 출국하기 전 날, 아니 직전까지도 살아서 다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걱정했습니다.

뭐든지 도전하기 전에 백 번 쯤 고민하다 결국 시도하지 않아 쌓인 후회만 여전히 잔뜩이고,

살인적인 북유럽 물가에 기죽어 외식 한 번 못 하고 귀국했다지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허술한 성격이 덴마크에서도 고대로 튀어나와 해프닝을 만들곤 했어요.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이유로, 나의 이야기를 이름모를 누군가에게 더욱이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못 타도,

이 멋진 나라에서 하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어도,

지하철 한복판에서 지갑을 잃어버려도,

반 년 동안 배운 덴마크어라곤 다섯 개밖에 없어도,

완벽하지 않아도 꿋꿋하게 즐거웠던 나다운 우여곡절.

그리고 그런 삶마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공간.


이 웃기고 달았던 시절을 엮어내면, 읽으면서 '지구 반대편에선 삶이 이렇게도 굴러갈 수 있는 거구나. 그럼에도 행복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될 수 있는 글을 쓰겠다 싶었거든요.

성공이라 부르긴 뭣해도, 보면서 피식 미소지을 수 있는 이야기들 말이죠.

전 언제나 멋있어지기보단 솔직하게 망가지는 게 편해요.

제 이야기를 통해서 제법 사적인 행복의 일면을 엿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에세잉을 쉬는 3년 동안 그저 평범했던 내 글과 생각이 어느새 특이한 공상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됐더라고요.

그렇다면 기꺼이, '오히려 좋아' 의 마음으로 써내려가겠습니다.


지난한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한 페이지의 추억.

제게는 코펜하겐에서의 나날이 그랬으니까요.

멋지지 않은 나의 대단했던 6개월, 미성숙하면서도 마뜩했던 날들의 기록들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좋으니 꼭 필요한 곳에 가닿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이 곳에 담으면서, 저 역시 잊고 있었던 스스로와 다시 마주했으면 합니다.



평생 휘게 (Hygge) 정신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안녕을 고했던 코펜하겐에서의 나날들.

제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행복의 편린을 하나씩 꺼내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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